캔틸런 효과
요즘 세계 경제가 '화폐 증발'이라는 거대한 신기루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상황이다. 숫자는 기만적이며 현실은 잔혹하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38조 7,9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수치를 돌파하며 GDP 대비 100%를 넘어섰고, 일본의 부채 비율은 250%라는 경이로운 임계점에 도달했다. 사람들은 이를 단순한 경기 침체나 정책의 실패로 치부하려 들지만, 경제사 측면에서 볼 때 이는 명백히 '캔틸런 효과'(Cantillon Effect)¹의 발현이다. 국가가 막대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 증발이라는 독약을 들이켜는 순간, 사회의 부(富)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재편된다. 우리는 지금 유동성이 만들어낸 가짜 풍요 속에서 실질적인 부가 권력의 정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약탈의 현장을 목격하는 중이다.
국가가 재정적자라는 파멸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본래 세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직접 세금을 더 걷는 증세다. 그러나 이는 대중의 즉각적인 분노와 조세 저항을 부르는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투표권을 가진 대중에게 주머니를 털겠다고 선언하는 정치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민간이나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국채 발행이다. 하지만 채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가 신용 등급'이 하락하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국가 부도라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결국 국가는 가장 유혹적이고 교활한 세 번째 경로, 즉 화폐 증발(부채의 화폐화)을 선택하게 된다. 중앙은행을 동원해 돈을 찍어 정부 부채를 사들이는 이 행위는 당장 국민의 눈앞에서 돈을 뺏지 않기에 저항이 적지만, 실상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소리 없는 세금'을 부과하여 국민 전체의 구매력이나 '화폐 자산'²의 가치를 강탈하는 행위다.
정부가 이러한 파괴적인 선택을 반복하는 구조적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는 그 자체로 세상에서 가장 큰 채무자이다. 화폐를 대량으로 살포하여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는 곧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의 실질 가치를 깎아내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정부는 앉아서 빚을 탕감받고, 성실하게 현금을 모은 국민은 그 가치 하락의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전형적인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 특히 부채 비율이 통제 불능 수준에 도달하면 국가는 '금융 억압'³이라는 칼을 빼들기까지 한다.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강제로 억제하고 유동성을 끊임없이 주입하여 정부의 이자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 풀린 돈은 금융권과 자산 시장이라는 상층부로 먼저 흘러가고,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가 된 서민들의 예금 가치는 처참하게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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