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평
'빌라왕', '건축왕' 등 조직적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거주 주택의 경ᆞ공매 절차가 진행되면서 임차보증금(전세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크게 절망하고 있다. 이미 2023년 초에 서울 양천구·강서구 쪽에서 문제가 크게 터졌고, 국토교통부는 빌라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신고센터를 이곳에서 운영하기에 이르렀다[2.2대책]. 그럼에도 문제가 수습되기는커녕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피해자들 중에서 연달아 3명이나 자살했다. 동탄에도 사기 피해자들이 많이 발생했는데, 삼성전자에도 피해를 당한 직원들이 많아 회사가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4월18일 전세사기 관련 부동산의 경매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피해지원 TF를 만들고 대책을 내놓았다. 채권자인 금융권에 해당 주택의 경매 진행을 당분간 유예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낙찰 시 금융지원을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잊을 만하면 재발하는 전세사기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인 전세 제도에 기생하는 전세사기 사건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주택공급이 부족하거나 주택가격이 폭등할 때마다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1960-1970년대 주택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에도 전세사기도 급증해 서민들을 괴롭혔다. 이에 대응하여 세입자 보호를 위해 1981년에 제정한 특별법이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그럼에도 사기수법은 더욱 교묘해졌고 잊을 만하면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재발하고 있다.
전세사기의 근원인 깡통전세는 처음에는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양자간 문제이지만, 강제집행 단계로 넘어가면 제3의 채권자들이 등장하면서 다자간 문제로 바뀐다. 이 때 은행, 세무당국 등 채권자들이 나타나고 세입자는 이들과 배당 순위를 따지게 된다. 이 때 세입자의 순위가 이들 채권자들보다 늦어 전세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이를 ‘깡통전세’라 부른다. 임대차계약 때부터 고의로 깡통전세가 되도록 꾸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 만한 위험이 있음에도 알리지 않은 채 세입자와 계약을 하는 행위가 바로 전세사기이다.
깡통전세 방지를 위한 제언
전세사기는 기존의 법적 장치만으로는 예방하기가 쉽지 않다.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민사집행법 등 관련 법령으로 무턱대고 세입자만 보호할 수도 없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사람들 간의 질서와 규칙을 무턱대고 바꿀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남을 해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사악한 범죄자로부터 임차인을 지키기 위하여, 이제는 보다 전향적인 세입자 보호장치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임대차계약시 집주인의 납세 상황을 임차인에게 알리는 것을 강제해야 한다. 잔금 수수 및 입주일 당시 해당 주택의 국세지방세 미납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국세완납증명, 지방세납세증명, 또는 새로운 특정물건 한정적 증명 신설 등)를 세입자에게 의무적으로 교부하게 해야 한다.
둘째, 경ᆞ공매 매각대금의 배당에서 세입자가 불리하지 않게 기준을 바꿔야 한다. 입주 및 전입일 익일에야 발생하는 대항력 발생시점을 당일로 바꾸고 다른 권리와 겹칠 경우 그 순위를 동순위로 취급하도록 해야 하고, 조세채권들의 법정기일도 현행 기준(신고일 또는 납세고지서 발송일)에서 납부시한 익일로 바꾸어야 한다.
끝으로, 깡통전세에 취약한 젊은이, 노인 등 취약세대의 안전한 계약을 지원하기 위하여 기초지방자치단체 내에 관련 공인자격을 갖춘 전문인력(변호사, 공인중개사, 법무사 등)로 구성된 ‘주택계약 도우미’(가칭) 제도를 설치ᆞ운영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은퇴했거나 취업하지 않은 전문인력 자원이 많이 있다. 이들을 활용하여 주택 임대에 관한 사전 시장조사나 계약 체결 전의 권리 실태를 점검하여 취약임차인을 도우도록 하면 깡통전세, 나아가 전세사기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