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만큼 정비사.

by 양손

이발사와 정비사.

괜찮은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친해져야 할 '전문가'를 꼽자면, 나는 이들을 꼽는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경고등이 들어오는 자동차에 다른 사람을 태우는 일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머리도 마찬가지다. 옆머리가 길어 귀를 덮은 상태에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지저분해 보이니까. 결벽과 정 반대의 인간인 내가 유일하게 깔끔 떠는 두 가지다.


물론 만족할 만한 정도의 전문가를 찾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이발사와 정비사 모두 나에게 딱 맞는 장소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 그리고 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길고 지루한 그 과정을 끝내고 마침내 내 몸에 딱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말로 다 하기 힘들 정도다.


내가 머리 깎는 이발소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물론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에서 가까운 이발소 중 하나였을 뿐. 집 근처 거의 모든 미용실과 이발소를 옮겨 다니다 겨우 찾은 '진짜'다.

여든이 넘은 이발사가 다 쓰러져 가는 건물에서 60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머리를 깎는다. 연탄난로가 있고 끝나면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주는 곳이다. 요즘 유행하는 바버샵 아니고 진짜 이발소.


쇳소리 나는 미닫이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면 텔레비전을 보던 이발사는 느릿하게 일어나 손주뻘인 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손님인 나는 더 깍듯이 인사하고 얇은 티셔츠 차림으로 의자에 앉는다.

어떻게 깎아달라거나, 어떻게 깎아주길 바라느냐는 질문은 첫날 이후 서로에게 한 적이 없다. 제비초리가 있는 나는 뒷머리를 짧게, 하지만 층지지 않게 높은 상고로 자른다. 동시에 길지 않지만 손질하지 않고 밖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적당히 짧은' 길이를 좋아한다. 이 이기적인 주문을 이발사는 빠짐없이 기억하고, 나는 두 번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발이 끝나고 안경을 다시 쓰기 전까지는 완성된 머리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나 불안해하지 않는다. 내 머리를 망치면 더 기분 나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발사일 테니까. 이발사에게 내 머리는 60년 동안 본인이 존재해 온 근거이며, 자존심이다. 본인을 온전히 믿고 매번 찾아오는 손님을 실망시키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매번 똑같은 모양이지만 머리 길이와 그 이유를 설명하며 이발을 마친다. 그는 나의 이발을 해주고 생계를 이어갈 수익을 얻고, 나는 산뜻한 기분과 함께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당연히 결과물은 매번 자로 잰 듯이 만족스럽다.


정비소에 갔다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어 온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정비내용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내거나, 돈은 돈대로 쓰고 차를 제대로 고치지 못한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난다. 그 덕에 구경도 못한 자동차의 본 적도 없는 정비과정에 대해 거의 매일 욕을 먹는다.

먹고사는 일이니까. 감정 섞지 말아야지 마음먹다가도 화가 나고 안타까운 게 사실이다.

당연히 차대번호 조회해서 출고된 제품들이고 같은 차종에 적게는 몇십 대분, 많게는 몇 백대분을 판매한 제품인데 그 차량만 특별하게 매뉴얼과 다른 구조를 갖고 있을 방법이 없으니까. 사람이니까 화가 날 수 있다만 그 화풀이를 앞에 있는 정비사가 아닌, 부품업자인 나한테 하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었던가.

몇 년쯤 지나 부드럽게 위기를 넘기는 방법을 깨우치고 나니, 나한테 싫은 소리 하던 고객들 입장이 되어볼 정도의 여력이 생겼다. 그 결과, 화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지는 요즘이다.

다른 곳보다 조금이라도 싼 게 경쟁력이라지만 적어도 내 차를 고치는 정비사라면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 게 먼저가 아니었을까. 머리 깎는 이발소도 동네 근처 한 번씩 다 다녀보고, 머리 몇 번 망칠 각오로 '내 타입'의 믿을만한 곳을 고른다. 하물며 내가 매일 타야 하는 자동차를 고치는 정비사를 찾는 일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에는 그 노력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정비소는 이발소만큼이나 많지만, 그 많은 정비사중에 괜찮은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단순히 나의 억지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공들여 좋은 정비소와 정비사를 찾았으면 한다.


당신의 자동차를 잘 고쳐주는 것이 정비사의 자랑거리가 되고, 그것으로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경험을 꼭 해보길 권한다. 이를테면 정비사는 받은 돈 보다 더 정성껏 차를 고치고, 돈은 더 안 받을 것 같으니 양손 가득 간식거리를 사서 정비소를 찾는 일 같은 것.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쌓여 다음 차로 바꿀 때쯤엔 반 전문가가 되어있는 당신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정비사의 의견을 신뢰하는 차주가, 동시에 정비사의 존중을 받는 차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날이 추워지는가 싶었는데, 여름보다 길어진 윗머리를 발견했다. 아마도 이발사 아저씨의 F/W 버전 이리라. 하체에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한두 군데 교환을 해야 할 것 같고, 14만 Km가 다가오니 엔진오일도 교환해야겠다. 귀찮으니까 자격증 있는 네가 고치라던 나의 오래된 정비사에게 전화할 때가 되었다. 물론 따끈한 스타벅스 라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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