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의 숨은 순기능.

by 양손

다운사이징은 원래 인원감축이니 조직규모축소니 하는 듣기만해도 살떨리는 경제용어였다.

기본적으로 '큰걸 작게 해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얻는다' 라는 개념이니 살빼는 다이어트랑도 비슷하다.

이 용어가 자동차에도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제조사마다 여러가지 형태로 해석해서 제품을 출시하고 있지만, 쉽게 정리해보면 '큰 차에 작은 엔진'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지금보다 더 적은 돈으로 자동차를 유지하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이 작은 차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언제나 더 넓고 쾌적한 자동차를 원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동시에 더 경제적으로 자동차를 유지하고 싶어지니 작은 엔진으로 갈 수 있는 큰 차를 만드는 기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표적인 예라면, 익스플로러 2.3 에코부스트 같은 차.


하지만 사람으로 치면 강호동처럼 생긴 운동선수가 아이유처럼 먹고 원래의 운동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게 언뜻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큰 덩치를 움직이려면 큰 힘이 필요하고, 자동차에서 큰 힘은 큰 엔진을 뜻한다. 물론 작은엔진으로 터보니 슈퍼챠져니 쥐어짜서 그 힘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으나 같은 배기량의 자연흡기보다 많은 연료를 소모할 것이고, 과부하가 걸린 부품들은 내구성에 약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자동차를 유지하는데 이전보다 더 경제적인가 하는 부분에서 사람마다, 차종마다 그 해석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운사이징의 호불호가 갈리는 한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감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벤츠의 E300은 더이상 6기통이 아니다. BMW의 530i도 마찬가지로 4기통 터보엔진을 얹었다. 어떤엔진이 더 좋다, 나쁘다 를 떠나서 6기통 자연흡기엔진 특유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잃게 되었다. 마력이나 연비와 크게 상관없이 그 여유로움을 사랑했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섭섭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만나본 상당수의 유저들이 이 부분에서 속상함을 표현했고, 어떤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운사이징이 적용될만한 크기의 자동차라면 효율도 효율이지만 감성도 감성이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은 엔진이 들어갔다고 해서 차값이 내려간 것은 아니니까.


100% 감성의 이유로 '작은 차에 큰 엔진' 의 취향인 나에게, 다운사이징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유행이었다. 늘어난 배달 오토바이처럼, 밤에 만난 전동킥보드처럼. 이해는 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이 국산 자동차 메이커에 본격적으로 적용 된 시점부터, 그 동안 수입 메이커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분명한 장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좁은 시야를 반성하게 만든 모델은 특별할 것 없는 아반떼였다. 참고로 나는 그 오랜세월동안 아반떼를 사고싶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현대기아의 1600cc 터보엔진은 200마력이 넘는다. 200마력짜리 엔진이 쏘나타에 들어가면 별 감흥이 없겠으나 아반떼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K3, i30, 벨로스터, 코나, 셀토스 등등 소위 준중형이라고 불리는 크기의 차종들에 터보엔진을 적용하면서 '잘나가는' 소형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운사이징을 위해 만든 소형 터보엔진들이 얼떨결에 재대로 된 주인을 찾는 모습이다.

과연 다운사이징이 유행하지 않았더라도 아반떼에 200마력짜리 엔진을 순정으로 올려줬을까? 하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것이다.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는 세그먼트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해오던대로 해도 어차피 잘 팔리는 구성에 궂이 손을 댈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닌가.


이유야 어찌되었건, 별 관심 없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아반떼 터보를 한번 사볼까? 싶은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수동기어에 깡통옵션이라도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다고 느낄만한 차를 오랜만에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4개가 다 달렸으니 보험도 저렴할 것이고, 겉모습은 아반떼니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아저씨들의 장난감이건, 20대 초중반의 현실적 드림카건 어느쪽이라도 좋을 것이다. 실용적인 동시에 재미있고 그럼에도 얌전하게 생긴 자동차는 생각보다 찾기 힘드니까.


'다음차는 뭐 사지?' 를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인 나에게, 요즘 상상속에서 치열한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는 차종은 쏘울 1.6 터보와 i40 2.0 휘발유다. 지금 타는 해치백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큰 짐칸을 갖고싶다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큰 고민없이 '다음차는 i40 이다.' 라고 정해놓은지 꽤 오래되었지만 신형 쏘울을 타보고 나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무려 200마력 짜리 짐차라니.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을 내가 직접 쓰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심지어 쏘울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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