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사이징의 호불호가 갈리는 한가지 이유를 더 찾자면 '감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벤츠의 E300은 더이상 6기통이 아니다. BMW의 530i도 마찬가지로 4기통 터보엔진을 얹었다. 어떤엔진이 더 좋다, 나쁘다 를 떠나서 6기통 자연흡기엔진 특유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잃게 되었다. 마력이나 연비와 크게 상관없이 그 여유로움을 사랑했던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섭섭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만나본 상당수의 유저들이 이 부분에서 속상함을 표현했고, 어떤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운사이징이 적용될만한 크기의 자동차라면 효율도 효율이지만 감성도 감성이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은 엔진이 들어갔다고 해서 차값이 내려간 것은 아니니까.
100% 감성의 이유로 '작은 차에 큰 엔진' 의 취향인 나에게, 다운사이징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유행이었다. 늘어난 배달 오토바이처럼, 밤에 만난 전동킥보드처럼. 이해는 되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이 국산 자동차 메이커에 본격적으로 적용 된 시점부터, 그 동안 수입 메이커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분명한 장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좁은 시야를 반성하게 만든 모델은 특별할 것 없는 아반떼였다. 참고로 나는 그 오랜세월동안 아반떼를 사고싶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현대기아의 1600cc 터보엔진은 200마력이 넘는다. 200마력짜리 엔진이 쏘나타에 들어가면 별 감흥이 없겠으나 아반떼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K3, i30, 벨로스터, 코나, 셀토스 등등 소위 준중형이라고 불리는 크기의 차종들에 터보엔진을 적용하면서 '잘나가는' 소형차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다운사이징을 위해 만든 소형 터보엔진들이 얼떨결에 재대로 된 주인을 찾는 모습이다.
과연 다운사이징이 유행하지 않았더라도 아반떼에 200마력짜리 엔진을 순정으로 올려줬을까? 하는 질문에 당연히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것이다. 어차피 다른 대안이 없는 세그먼트다. 메이커 입장에서는 해오던대로 해도 어차피 잘 팔리는 구성에 궂이 손을 댈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닌가.
이유야 어찌되었건, 별 관심 없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아반떼 터보를 한번 사볼까? 싶은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수동기어에 깡통옵션이라도 오히려 그게 더 재미있다고 느낄만한 차를 오랜만에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4개가 다 달렸으니 보험도 저렴할 것이고, 겉모습은 아반떼니까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아저씨들의 장난감이건, 20대 초중반의 현실적 드림카건 어느쪽이라도 좋을 것이다. 실용적인 동시에 재미있고 그럼에도 얌전하게 생긴 자동차는 생각보다 찾기 힘드니까.
'다음차는 뭐 사지?' 를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습관인 나에게, 요즘 상상속에서 치열한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는 차종은 쏘울 1.6 터보와 i40 2.0 휘발유다. 지금 타는 해치백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큰 짐칸을 갖고싶다는 생각이 자라나고 있다. 큰 고민없이 '다음차는 i40 이다.' 라고 정해놓은지 꽤 오래되었지만 신형 쏘울을 타보고 나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무려 200마력 짜리 짐차라니. '세상 좋아졌다'라는 말을 내가 직접 쓰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심지어 쏘울을 바라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