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륜구동, 역시즌 초특가.

by 양손

날씨가 추워졌다.

여름도 여름이지만, 겨울도 만만치 않게 싫다. 춥고 건조하니 나처럼 누가 챙겨주지 않는 남자들은 꼬질꼬질해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얼마전까지 들리지않던 하체 잡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자리가 남아돌던 지하주차장이 붐비기 시작한다. 개와 함께하는 뚝방길도 여기저기 얼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하루에 세 시간 넘게 산책을 해야하는 나의 온몸이 시렵다. 여름에 사놓고 있는지도 몰랐던 롱패딩을 부랴부랴 꺼냈다.


몇년 전 부터인가, 여름 가장 더운 날 두꺼운 구스다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온갖 박스와 선반, 기름과 쇠 사이에서 일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거의 100%의 확률로 어딘가 찢어지거나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묻게 된다. 어차피 매년 사야하는 물건이기에 유명한 메이커나 마음에 드는 디자인보다는 때안타는 검정에 싸고 두꺼운게 최고다. 메이커와 디자인만 잘 선택하면 십만원 언저리에 무려 구스다운을 구입할 수 있다. 어차피 1년도 못입고 찢어져서 테이프로 대충 때울 물건이지만 속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창고에 연탄 가득 쌓아놓은 것 처럼 말이다.


운송기기도 구스다운처럼 '역시즌'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새차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중고로 구입한다면 오토바이와 자전거, 자동차 모두 '겨울'이면 가격이 내려가는 모델들이 존재한다. 극도로 더운 여름과 극도로 추운 겨울을 둘 다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후 덕분인데, 춥거나 눈이오면 타기 힘들 것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는 날씨가 추워지면 '시즌오프' 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는 파쏘나 바튜메, 중고나라 같은 네이버카페에 중고매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값이 싸기때문에 속칭 '기변병'을 치료하기 위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평균 2년쯤마다 차를 바꾸는 나에게 미쳤느냐는 반응들을 종종 보이는데, 이륜차쪽에선 양호한 편에 속한다. 1년에 몇번씩 바꾸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겨울에도 타는사람 있던데?' 라는 반응을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한겨울에 오토바이로 40분걸리는 거리를 통학했던 사람으로서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콧물이 얼어서 뺨에 붙는 경험을 궂이 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자동차 쪽에서는 후륜구동 자동차들이 역시즌 초특가 세일을 시작한다.

여름엔 장마비가 내리고 겨울엔 폭설이 내리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대한민국에 출시된 대부분의 자동차는 FF, 그러니까 앞에 엔진이 있고 앞바퀴가 굴러가는 '전륜구동' 형태의 자동차들이다. 전륜구동은 만들 때 후륜이나 사륜구동보다 간결하다는 장점 외에도 눈 위에서 덜 미끄럽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하면 후륜도 눈위에서 괜찮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꽤 괜찮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여름타이어 겨울타이어 따로 구비해서 철마다 바꾸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포터나 다마스같은 '어쩔수없이' 후륜인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승용 국산차 후륜구동의 기준점은 제네시스 부터다. 물론 요즘나오는 차들은 4륜구동을 선택할 수도 있다. 수입차는 4Matic이나 Xdrive가 아닌이상 벤츠와 BMW의 거의 모든 차량이 후륜이고, 시국이 시국이지만 ES를 제외한 거의 모든 렉서스도 후륜이다. 대부분 후륜구동 특유의 승차감이나 뛰어난 코너웍을 위해 비싼 차값을 지불하고, 눈오면 못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구입하는 차량들이니 실용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번쯤 갖고싶다고 생각했던 차종이 혹시 후륜구동이라면, 겨울을 잘 공략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르노에서 마스터를 들여온다고 했을 때,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물론 현대의 포터나 기아의 봉고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하고있는 차들이지만, 탑차 안에 들어가서 허리굽히고 일하는 택배기사님들을 떠올려보면 세상 좋은 선택이다. 그뿐인가, 전륜구동이라 겨울에 눈이오거나 빙판있는 골목길도 지금보다 더 편안히 다닐 수 있을테니 안전하기까지 할 것이다. 포터보다 비싼것 말고는 장점이 많지만, 가격이 가장 중요한 장르이니 새차가 나와도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아직 허리굽히고 일하는 현실이다.


1997년도에 처음 출시한 스타렉스는 2019년 12월까지 단 한번 풀체인지했다. 포터나 봉고는 자료를 찾아봐야 할 만큼 더 오랫동안 겉모습만 바꿔서 출시되고 있다. 물론 사골의 안정성을 믿는다. 하지만 이정도 했으면 조금 더 다양한 선택지를 공급해야하지 않는가. 97년식 쏘나타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난다. 고민해서 내놓은 6천만원짜리 쏠라티라니, 이게 최선인가 말이다.


후륜구동 역시즌 세일기간인 요즘을 맞이하여, 몇일째 괜찮은 로드사이클 매물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동안 쉬었던 수영도 다시 시작했으니 개산책이면 충분하다고 미뤄두었던 다른 운동들을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그런다고 살이빠지고 갑자기 잘생겨질 방법따위 있을 리 없지만, 잠시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벌써 겨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운사이징의 숨은 순기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