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갖지 않으려 하는 욕심 또한 욕심이라던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남들보다 더 좋은 무엇인가를 갖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 의미있는 행동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중이다. 근사하지는 않지만 잘 가고 잘 서는 자동차를 갖고있고, 매출이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생활에 큰 지장없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궐같지 않지만 불편하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있다. 종합하면 나는 요즘 나의 삶에 만족하며 지내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두 달간 단 한글자도 쓰지 못한 이유를 찾자면 욕심. 역시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작년에 해야했지만 하지 못한 일, 새 해에 하고 싶어서 계획만 세워뒀던 일 등등 쉽게는 사람만나서 밥먹는 일 부터 크게는 사업의 확장까지 상상속에서만 원하고 실제로 갖지 못한 일들에 대한 욕심이 무한대로 커져만 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요즘이었다. 지금까지 바래왔으나 갖지 못한 일들이었으니 앞으로도 쉽게 갖지 못할 것이 당연할테지만, 조금 더. 어떻게든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상대적으로 덜 치열한 키보드 앞에 앉는 일을 소홀이 한 결과다. 좋은 키보드와 스탠드를 들이며 어릴 적 이루지 못한 꿈을 들먹인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생긴 동물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더 갖고싶은 욕심은 결국 넘쳐흘러 내 책상위를 넘어 지금 타고있는 자동차에도 스며들었다.
최근 자동차가 근본적으로 싫어진 나의 취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서, 팔자에도 없던 크고 고급스러운 차종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들사이즈에서 풀사이즈에 이르는 가죽시트가 잔뜩 들어간 커다란 SUV에서, 국산과 수입을 가리지 않고 통풍시트와 고급 오디오 시스템이 옵션으로 들어간 세단들까지.
일을 위한 도구, 개를 위한 운송수단,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거처가 아닌 남들이 보기에 멀쩡해보이는 자랑거리 겸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쯤 해도 괜찮으리라는 스스로를 향한 억지포상같은 차종들을 다음 후보들로 올리고서는 최근 몇 주간 저울질해대곤 했다.
물론 매번 강조하지만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은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그 기준은 어떤 이유에서건 존중받아야 한다. 이건 당연히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용도에 맞아 쓸모있고, 유지하기에 편안한 차종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고작' 운송기기에서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을 찾고자 하는 지금의 리스트는 분명히 문제를 갖고 있다. 정확히는 이유도 과정도 만들지 않은 체, 바로 편안한 다음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내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차라도 좋은거 타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은 멍청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혀 요즘 나오는 호화스러운(?) SUV를 사볼까 싶어, 여러 차종을 기웃거려본 결과 깨달은 점이 한 가지 있다. 비슷한 사이즈의 세단들보다 비싸고, 모노코크라 한들 빠르지도 안락하지도 않은 SUV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쉽게 정리하자면 크고 호화스러운 SUV를 구입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마어마하게 큰 짐칸이 필요한 것도, 눈오는 날 꾸역꾸역 올라가야 하는 산꼭대기에 사는 것도 아닐것이다. 물론 가족이 많거나, 나처럼 업무때문에 짐을 자주 많이 싣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꼭 SUV여야만 해서 SUV를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주 극소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출퇴근과 쇼핑, 한두명의 아이와 1년에 두어번 가는 여행을 위해 구입하기엔 SUV는 상당히 비싸고 거추장스러운 장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들이 SUV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공간이다. 공간.
조금 짠하지만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공간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순하게 쓸모있는 자동차라고 한정짓기 보다 아저씨들이 온전히 본인의 취향과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쉽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자신의 입지와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이 하루에 한 두시간 남짓한 출퇴근 시간동안 만이라도 넉넉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즐거움을 찾기위해 SUV를 선택하고 그에따른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해보면 딱히 이해못할 것도 아니다. 아파트에 혼자살고, 사무실을 혼자쓰고, 자동차를 혼자타는 나같은 인간은 절대 이해못할 영역이겠지. 그런 나도 공간이 또 갖고싶어 SUV를 사고싶었으니. 말 다했다.
어느새 나도 아저씨라고 불리기에 전혀 위화감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뽀로로마냥 노는게 제일 좋고, 후드티와 운동화가 아직 잘 어울리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산기가 끊임없이 돌고, 하루하루 체력이 줄어드는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완벽한 아저씨다. 조금이라도 더 벌고싶고, 남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상당히 순도높은 속물이며 그래도 난 아직 꿈이 있다며 큰소리 치는 치사한 꼰대지망생이다.
물론, 그와 동시에 조금이라도 덜 아저씨가 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기도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나오는 SUV에 열광하는 아저씨들의 마음을 절절히 공감하는 것을 보면 덜 아저씨가 되기는 이미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욕심에 휘둘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