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있고, 직업특성상 왠만한 사람은 그냥 웃고 넘어가는게 일상이다.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다른 사람에게 별다른 기대나 감정이 없는게 나의 단점이자 장점이었으나, 요즘 급격하게 그 수가 늘어 도저히 참지 못할 만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동차를 유튜브로 배운 사람들'이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거나 일상 생활에서 전문가를 대면해 볼 기회가 많지 않은 분야, 혹은 도제식의 교육방식 덕에 배우고 싶어도 쉽게 배울 수 없었던 분야들을 무료로, 쉽게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는 오래전부터 아주 강렬한 형태로 존재했다. 여기에 새로운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간절함이 유튜브라는 무료 동영상 플랫폼에서 만나 꽤 오래전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들을 만들고 있다. '돈 없어서' 못 배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왠만한 국가보다 나은 유튜브의 순기능이다. '나때는 말이야' 를 외치던 이 바닥 꼰대들이 실제로 억울해 할 만한 요즘이다.
그러나 고작 십분짜리 영상 대여섯개 보고나서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듯 '방구석 전문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들은 점차 댓글창을 벗어나 일상생활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춤주춤하던 그들의 태도도 요즘엔 아주 당당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려 권위적이기까지 하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라고 수줍게 시작하는 사람에서 부터, 특정 유튜버의 이름을 대며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니 이미 이게 옳은 것이겠지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디한번 들어나 보자.'라는 식의 무례한 태도로 질문을 해대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미대출신에 디자인전공, 자동차 부품가게를 운영하면서 얼마전에 재미삼아 작은 바를 시작한 나는 두말할것 없이 이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예술과 디자인, 자동차와 인테리어, 커피와 위스키, 사진과 오토바이, 인터넷 쇼핑몰과 투잡 사장, DIY와 소액창업 등등. 방구석 전문가들이 물어뜯기 좋아할만한 것들을 다 갖고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저 돈이 없었을 뿐이었으나 얼결에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었고, 질문을 하는쪽보다 받는 쪽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웃으며 내 나름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차근차근 설명하려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봤는데' 로 시작하는 질문에 짜증부터 내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중에서 나를 특히 화나게 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유튜브로 '잘못'배운 사람들이다.
당장이라도 쉽게 경험 해볼 수 있거나, 혹은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 볼 일이 없는 일. 둘 중 하나에 속하는 일이라면 '아, 그렇구나.' 정도로 쉽게 넘어간다. 궁금하면 당장 해보던가, 아니면 어차피 평생 못해보던가. 하지만 자동차는 좀 특이한 케이스다.
택시만 타도 쉽게 경험할 수 있고, 심지어 나도 갖고있지만 막상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차를 사자니 돈이 비싸다. 튜닝이니 정비니 이렇다더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해보자니 귀찮고 어렵다. 종합하면 '돈하고 시간만있으면 나도 하지.' 정도의 자신감을 누구나 갖고있는 카테고리라는 말이다.
결론은, 그래서 요즘 내가 보통 피곤한게 아니다.
'구멍가게 아저씨가 무슨 전문가냐', '남이 뭘 타던 그게 뭐가 중요하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따위의 말들은 귓등으로 날아간지 오래다. '누구 시승기에 나왔는데 이거 어떠냐. 너라면 살꺼냐, 너라면 이 옵션 넣을꺼냐, 이걸 모른다고? 헐 대박사건.' 정도가 요즘 내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공격의 흐름이다.
BMW 카드니그릴이 커진게 내 탓인가. 싼타페 페이스리프트가 그모양인게 내탓이냐고. 어차피 그랜져 신형 나오면 그거 살꺼면서, 스팅어가 단종이 되거나 말거나. 풀어쓰면 별 거 아닌 영어 줄임말 몇 개 못 알아들었다고 무시당하는 이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는 말이다.
내 생각엔, 자동차를 유튜브로 배우는 건 키스 잘하는 법을 지식인에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
사람이 타는 바퀴달린 모든 물건에는 '감성'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숫자와 글씨로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아주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는 아직도, '부드러워서' 20년된 530i를 주말마다 고쳐타는 사람들과, 좁아터지고 엉망으로 비싼 1800cc 로터스를 '재밌어서' 타는 사람들의 편이다. '페인트통 열개가 더 들어가서' 이스타나 롱밴을 아직도 고쳐타는 사람들과 맨날 고장나도 '소리때문에' 콰트로포르테를 드림카로 삼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말이다. 키크고 잘생기면, 예쁘고 몸매좋으면 키스 할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나겠지. 하지만 그뿐이다. 마음이 움직이는건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럴것이다' 말고 '그렇더라' 쪽에 신뢰가 생기는건 당연하다. 모르는건 모른다고, 안해본건 안해봤다고 하는게 훨씬 멋있다. 그게 자동차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잡지에 나오는 2억차리 스포츠카 말고, 아반떼 대신에 i30을 선택한 이유나, 선루프 달린 차를 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훨씬 매력적이다.
만져보고 느껴보는게 가장 중요한 나는, 그래서 자동차 말고 키스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잠깐 생각했다.
관련 신체기관이 퇴화한건 아닌가, 진짜 입만 살아있는건 바로 나인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연애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어디가서 한마디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