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가수 '테이'님이 나온 밥먹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평소 대식가로 소문난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나요?' 라고 묻자 그는 머쓱해하며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열심히 하지 않은게 먹는 일이었는데요.' 라고 답했다.
모든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도 열심히하지 않았으나 남들보다 잘하게 된 일이 있다. 바로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의 거의 모든 모델을 꽤나 세세히 아는 일이다. 외우려 열심히 노력해본적도 당연히 없다. 왜인지, 어떻게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그냥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니, 어떻게 람보르기니가 다 똑같이 생겼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엄마, 아빠, 초코파이 다음에 배운 말이 '쏘나타'였다던 엄마의 믿을 수 없는 증언으로 부터, 올해로 33세가 되었으니 이 능력(?)을 본격적으로 갖게된지도 20년쯤 되었다. 그러다보니 가볍게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흥망성쇠라던가, 이 모델이 어느 시대에 유행하던 어떤 스타일의 차였다던가 하는 '그런가보다' 하는 이야기부터 어떤제조사의 몇년식 무슨 모델은 B필러부터 C필러까지 이어지는 라인의 디자인이 좋았다던가, 어떤 차종의 어떤 엔진과 어떤 변속기는 어떤 성격과 어떤 외모를 가진 어느나라 사람이 떠오른다 라는식의 말도안되는 영역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흔히말하는 '차덕'이 되었다.
변명이라고 까지 할 것은 없지만,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일부러 시간내서 공부해야만 했던 전공과목과는 달리 자동차는 집밖에만 나오면 눈에 보였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때마다 따로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도로에는 언제나 차들이 넘쳐났고 멀리 갈 것도 없이
택시만 타면 따끈따끈한 신형 그랜져를 타볼 수 있었다. 솔직하다 못해 잔인한 기사님들의 평가는 덤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길에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발견한 순간부터 구매하기 직전까지 나의 의견을 듣고싶어 했다.
그리고는 중고건 새것이건, 오토바이건 자동차건 사오자 마자 마치 심사라도 받는 표정으로 나를 옆 혹은 뒤에 태웠다. 물론 장점만 콕 찝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미 사온 자동차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자동차는 꽤나 괜찮은 소재였다.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상대라면 술자리 내내 자동차 이야기만 해도 센스있고 유쾌한 동시에 깊이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축구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생각보다 꽤 많지만, 자동차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아주 적다. 아니, 거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 다 그렇듯 이 회사 저 회사 인턴생활을 하면서 어영부영 스물아홉을 맞이했다.
서른을 앞두고 더는 미룰 수가 없어 딱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때 나는 큰 고민 없이 자동차를 선택했다.
자동차 중에서도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 아무런 지식도 계획도 없었지만 겁나지 않았다. 어차피 한번씩 다 해보면 될 일이었다. 그중에 나랑 맞는게 분명히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 결과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엄마를 제외한 주변사람들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런가보다 했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좋아하는 일이어서 잘 견뎌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동차 부품장사로 살고있는 30대의 나는 지금의 직업에 꽤 만족하고 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이 놀면서 더 많이 벌고 싶다는 고민은 이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을 선택했더라도 당연히 따라왔을 것이다. 업무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스트레스와 이리도 열심히 사는데 나는 왜 집이 없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점도 당연히 존재했을 것이다. 중요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라는 점이다.
그래서, -바퀴친화형 인간으로 살아가는것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워서.- 친구들과 맥주마시며 장난치듯 하던 자동차 이야기들을 글로 조금씩 옮겨적어볼까 하는 용기가 최근 생겼다. 일반인들은 조금 생소할 수 있는 현직 업계종사자의 이야기니 궁금하기도 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직접 겪은 일을 써내려 갈 테니까 나름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사실 그 부분을 가장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