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골프를 추천할 수 없는 이유.

by 양손


소형아파트에 혼자 사는 나는 20kg이 넘는 개를 키운다. 개와 함께 산책과 나들이는 필수다.

내 직업은 무엇이든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급하면 배달도 가고, 택배도 찾는다.

과속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답답한 차는 생각만 해도 싫다. 타본적도 궁금한적도 없다.

내가 '트렁크없는 차'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다. 나는 해치백의 팬이다.


그러나 나의 열렬한 팬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외에서 호평받는 국산해치백들은 한국에서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없다. 한국 소형 해치백의 대표적인 모델이었던 프라이드도 얼마 전 단종을 맞이했고 잘 만들었다던 신형 i30도, 나름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벨로스터도 상황은 비슷하다. '차는 좋다던데 도로에서 보기는 힘든 차.'가 대부분 이 부류에 속한다. 이유도 가지각색이지만 결국 종합해보면 '그 돈 주고 그걸 사기가 싫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수입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최근 3~4년 사이, 그랜져 살 돈으로 골프나 1시리즈 같은 차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이유가 정말 돈때문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 중에 '어떻게든 수입차 한번 타보고 싶어서 골프를 샀다.' 라고 솔직하게 말한 사람은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 대부분 '확실히 독일차가 좋긴 좋아' 라며 뜬금없는 연비 이야기로 시작하는 자기 자랑이 정석이다. 이게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골프가 진짜 좋아서 선택한 사람 만나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물론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은 개개인 모두가 다 다를것이고 그 기준은 분명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본인이 좋다는데, 그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매일, 몇 년을 타야 하는 차를 고른 이유가 '외제차 한번 타보고 싶어서.' 는 진짜 별로이지 않은가. 자동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 제조사의 국적이 한국이 아닐 것이라니.


일반적으로 말하는 '좋은 차'를 고르자면, 같은 돈으로 그랜져 타면 된다. 감성이야 개인취향이겠지만 거주성이나 편의성, 유지비와 중고차 감가부분에서 압도적이다. 엄청나게 깐깐한 한국 아저씨들을 세대를 거듭하면서 만족시켜 온 대한민국의 중형차는 전 세계적으로 놓고 봐도 가성비가 상당하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라기엔 너무 양질이고, 깐깐히 따져볼수록 합리적인 선택은 이쪽이라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가장 기분이 나쁜 건, 수입 해치백을 타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많이 팔았으니 좋은 일일테고, 시작은 '차키 꺼내놓으면 시선이 달라' 류의 이유였으나 실제로 타보고 그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테니 그 또한 좋은 일 이리라. 하지만 나와 실제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더이상 골프를 추천하기가 힘들어진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이쯤되면 폭스바겐에서 고소장을 쓴다해도 할말이 없지만, 나는 골프를 정말 사랑한다.

골프의 시작이 폭스바겐의 서민보급형 모델이었다는 것이 좋았고, 적은 돈으로 빠른 차를 타게 해주고 싶다는 GTI의 정신이 좋았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믿기 힘들만큼 실용적인 공간활용이 좋았고 그를 따라 다른 메이커에서도 줄줄이 핫해치를 내놓게 만드는,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카리스마가 좋았다. 신형으로 오면서 FF로 바뀌긴 했지만 가장 경쾌한 후륜구동 BMW였던 1시리즈도, 독일차보다 민첩하고 동시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 아름다운 푸조의 208이나 308도, 복스홀의 아스트라와 혼다의 시빅도 마찬가지다. 그냥 돈에 맞춰서 꾸역꾸역 선택해야 할 만큼 멍청한 장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자동차를 고르는 또래 친구들에게 본의아니게 꼰대짓을 하곤했다.

수입차로 바꾼다고 너의 삶이 고급스러워 보일 것 같으냐고. 아우디니 벤츠니, 차 좋은거 누가 모르냐고.

중요한건 차가 아니라 네가 좋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할부에 각종 유지비에 월급 받는 족족 갖다바쳐야 할텐데. 그게 니가 원하던 그림이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이야기 하는 내내 나 참 별로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담스러운 자동차가 생활에 도움이 될 리 없을테니까.


밥먹고 하는 일이 자동차 이야기인 나는, 닮고싶은 국산 경차오너도 S클래스 타는 건달양아치도 한 트럭은 알고있. 또한 내 차가 얼마짜리인가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멀쩡한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무리해서 수입차 타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을 정말 너무 많이 본다. 그러지 말자. 당신이 정말 여유로울때 선택해도 골프는 여전히 좋은 선택일테니까.


남에게 좀 덜 잘보이며 살아도 괜찮다. 니 차가 니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답해도 된다. 커피집 테이블에 올려놓은 차키모양으로 당신을 평가하는 이성이라면 바로 일어나서 쿨하게 집에가도 된다. 장담하건데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칠 중요한 사람들은 차키 따위로 당신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그따위 것으로 평가받기엔 우린 다들 너무 열심히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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