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QM6 가솔린이 가성비가 그리 좋다고들 하길레. 궁금해서 시승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원래 르노삼성이 아는 사람은 다들 아는 가솔린 SUV 맛집 아니었던가. QM5 부터 고장안나고 조용하다는 이유로 꾸준히 찾는 팬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문대로 가성비는 훌륭했다. 프랑스차 답게 신기할만큼 예쁘고 과분할만큼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운전습관과 CVT는 아직도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전모델들 보다는 훨씬 잘 붙는 느낌이었지만 말이다. 시승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있었다. 차가 아니라, 시승을 담당했던 삼성자동차 직원과의 대화였다.
'중고차만 타다가 새차로 넘어오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아요. 그게 생각보다 쉽지않거든요.'
이 사람은 오늘 처음 본 나에 대해서 대체 무엇을 얼마나 안다는 것인가.
시승을 끝내고 가격표를 받아든 후, 라운지에 앉아 서로의 지금 타는 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 드러내지 않고 매장을 나왔다. 아마 본인도 아차 싶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척 하느라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었으리라. 결국 먹고살자고 일어난 일이니까 이해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일종의 동종업계 사람들의 동료의식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두고두고 찝찝했고, 늦은 점심을 먹으며 중고차만 타는 삶에 대해서 잠깐 생각했다.
메이커. 그러니까 현대나 르노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회사 자동차를 구매할 때 직원할인이 있다.
그 할인율이 생각보다 높아서, 할인받아 신차를 사고 몇년 뒤 중고로 팔아도 대부분의 경우 처음의 신차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회사마다 가격방어가 잘 되는 차종들이 있지않은가- 그래서 대부분 새 차를 산다.
메이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자동차 업계 종사자가 포터가 아닌 신차를 계약하는 일은 상당히 보기 힘든 일이다. 카센터 사장님이건 부품업체 직원이건 도색집이건 썬팅집이건 마찬가지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소위'기름밥'먹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평생 중고차를 탄다. 여기엔 당연히 나도 포함된다.
누가 알려준 적은 없지만 조금만 관찰해보면 업종별로 그 이유는 꽤나 명확한 편이다.
중고차 딜러들은 대부분 팔다 남은 차를 탄다. 이미 감가가 다 되어서 더 떨어질 가격이 없는 차.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해서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차. 택시부활이라서 55만이나 60만이나 주행거리가 어차피 의미가 없는 차 등등. 제값받고 팔기 힘든 차나 한참 타다 팔아도 지금과 가격차이가 크게 없는 차들을 직접 탄다.
중고차 상품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업자들은 딜러에게 '매입가'에 차를 구매한다. 중고업자 전문 공업사나 도색집, 광택집, 썬팅집이나 용품점 같은 곳이 여기에 해당된다. 형님동생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어느정도의 마진이 존재 하지만 서로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상품화가 되기 전의 상태로 구매해서 도색집에서는 도색을, 공업사에서는 판금을 따로, 또 같이 해결해서 새차처럼 고쳐타면 된다.
폐차업자나 부품업자, 대형 공업사의 경우는 사고난 차를 잔존물 가격에 사서 고쳐타기도 한다.
음주운전 사고처럼 보험처리가 어려운데 견적이 많이 나온 차량이나, 별것 아닌 작은 사고지만 수입차 특유의 말도안되는 부품가격 때문에 전손처리된 차량들을 싸게 사서 직접 고쳐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저 중 어딘가에 나 역시 분명히 속해있고, 동시에 마음먹으면 어디에든 속하겠으나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부터 한결같은 취향이다. 나는 덜 똑똑한 차가 좋다.
최신의, 최첨단의, 풀옵션의 따위의 단어들이 나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내연기관을 대신해서 새로운 동력원을 가진 운송기기들이 탄생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좋은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주차니 자율주행이니 '자동차 주제에' 사람의 영역을 줄이려 드는 것은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네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기 시작할 때 쯤에도, 후방카메라와 센서가 유행할 때 쯤에도 지금과 정확히 같은 반응이었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가 사는 도시 지리정도는 대략적으로나마 머릿속에 있는게 정상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본인의 차로 카메라와 센서 없으면 주차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차를 끌고 도로에 나오면 안된다. 이건 내가 꼰대라서가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능력이다. 하물며 자동차가 운전을 대신 해줘야만 하는 시대라니. 말 다했다.
나의 취향은 네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를 건너 뛰고, 이제 오토라이트와 블루투스를 지나는 중이다.
매번 스위치를 돌려서 라이트를 키다 오토라이트를 사용해보니 아파트 지하주차장 들어갈 때 세상 편하다.
블루투스도 마찬가지다. AUX선이 없어지니 한결 깔끔한 센터페시아가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중고차를 타왔고, 앞으로도 쭉 중고차만 타게 될 예정이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클래식과 구닥다리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나의 취향이 마음에 든다.
심지어 아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