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필요한 시간
학창시절에 "자유시간"이라고 하면 다들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을 것입니다.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어떤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 참 정겹고 즐거운 기억입니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사방치기, 오징어, 돈까스, 허수아비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기억이 많습니다. 꼭 뛰어다니는 놀이를 하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었던 추억들은 아직도 저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자유시간"을 보상으로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유시간"이 좋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얘들아, 우리반 칭찬온도계가 이만큼 높아졌단다. 우리 다음 시간에 운동장에서 "자유시간"을 가져볼까?"
"와!!!"
교실이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밝은 표정에 제 마음이 다 달달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 이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사뭇 다릅니다. 제법 많은 아이들이 제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뭐해요?"
저에게 묻습니다.
이리저리 운동장을 누비며 놀고 있는 아이들도 점점 저의 곁으로 모여듭니다.
"뭐해요?"
"뭐하고 놀아요?"
"심심해요."
운동장이 있고, 우리반 친구들이 있는 이 공간에서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집니다.
"얘들아, 이번 시간은 너희가 그렇게 원했던 자유시간이야. 자유시간은 친구들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게 보내면 된단다. 선생님한테 자유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에는 뭔가 하고 싶었던게 있던거 아니었어?"
"핸드폰해도 되요?"
어떠신가요.
세상이 달라졌으니 아이들의 노는 문화도 달라졌다고 이해해야 할까요? 그럼 아이들의 자유시간에 핸드폰을 쥐어 주어야 할까요?
물론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고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재미있는 세상이 우리 정신을 쏙 빼놓기도 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아이들의 여가시간이 모두 핸드폰으로 꽉 채워져 있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놀이를 꼭 가르쳤습니다.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 등등 놀잇감을 사서 함께 놀며 놀이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럼 그 해의 아이들은 저 놀이들을 잘 하고 놀았을까요? 너무나 아쉽게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함께 놀고 놀이 방법을 알려주어도 아이들은 놀이를 즐겁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아이들은 저 재미있는 것들로 재미있게 놀지 못할까. 저는 두가지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제가 가르쳤기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누구한테 배웠는지 기억나시나요?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학교나 동네에서 누군가 하는 것을 봤고 따라해봤고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 같습니다. 놀이를 하다가 여러 규칙도 바뀌고 추가되고 하면서 "동네의 룰", "우리반의 룰"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막상 저 놀이들의 규칙들을 설명하려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디테일한 규칙들은 놀이를 즐겁게 하는 요소가 되지만 이것들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테일한 규칙들 없이 놀이를 하기에는 놀이가 시시해집니다. 놀이를 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변형하는 과정은 친구들과 의논해서 협의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의논해서 하나의 결론을 만드는 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럿이서 해야 하는 놀이를 둘이서, 혼자서 합니다. 재미가 없어집니다.
놀이의 규칙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놀이의 참여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이를 배워서 하려니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매끄러운 진행도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유롭게 모여서 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야 선생님이 함께 하니 괜찮지만, 그 외의 시간에 굳이 그 놀이를 하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놀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놀이들은 어렵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어릴적 누구나 놀았던 저 놀이들이 어떻게 어려운 것이냐고. 그런데 저 놀이들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놀이들입니다. 내가 규칙을 안다고해서 바로 놀이를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익히고 연습해서 숙련되어야 즐길 수 있는 놀이들입니다.
공기놀이를 예로 들어 볼까요?
저학년들은 공깃돌을 던지고 잡는 것도 많이 연습해야 할 수 있습니다. 기껏 한알 잡았더니 그 다음 단계는 두알씩 잡아야 합니다. 일단계를 성공하는 친구도 없을 뿐더러 일단계를 성공했다고 이단계에 도전하는 친구도 드뭅니다. 많이 해봐야 늘고, 늘어야 재미있는 이 놀이들을 당최 즐길 수가 없습니다.
핸드폰을 딱 켜서 누르기만하면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지는데, 놀기 위해서 연습이 필요하다니요. 요즘 그렇게 인내심있게 연습하는 아이는 찾기 어렵습니다. 만약 이런 아이가 주변에 있다면 크게 칭찬해 주십시오. 뭘해도 될놈입니다.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주는 것도 별로고, 놀이를 알려주는 것도 별로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충분히 심심해야 합니다.
심심하면 놀거리를 찾습니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운동장을 뛰어다녀 보기도 하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다보면 놀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 심심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심심해 한다고 해서 즉각적인 놀거리를 대령해주기 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놀거리를 찾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할 일입니다.
물론 처음 한번으로 아이들이 잘 놀지는 않습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심심한 시간들이 쌓여간다면 아이들은 그 공간에서 자신들이 가진 놀거리를 찾게 됩니다. 지금 아이들이 찾는 놀거리를 우리가 아는 것들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춤을 추기도 하고, 아는 노래를 모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봤던 놀이들을 모방하며 자신들의 놀이를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심심한 시간을 견딘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선물 같은 시간들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기다립시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기보다는,
장난감 가게로 손을 잡고 가기보다는,
"뭐 하고 놀까?"
여러번 물어봅시다.
잘 노는 아이가 잘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