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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Oct 20. 2023

단단한 울타리

나의 학급경영 수칙 세가지

학급경영은 해도해도 어렵다. 매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학급 구성원이 변하고, 동료교사들도 바뀌고, 학교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뿐인가. 여러 사회적인 이슈들도 학급 경영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기억을 떠올리기도 아픈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해, 그 해의 학급경영은 "안전"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학급경영을 추구한다. 




가장 중요한 한가지, 학급규칙은 없다. 

학급규칙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지켜야할 규칙들은 많다. 실내에서 뛰지 않기, 친구를 때리지 않기, 화장실은 차례로 이용하기, 친구물건 손대지 않기, 욕하지 않기, 지각하지 않기 등 너무 많다. 누군가는, 그건 기본이고 우리 학급만의 특별한 규칙들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규칙이 많아지면 지키기도 어렵지 않을까. 지키기 어려운 규칙을 만들기 보다는 있는 규칙이라도 잘 지키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위에 나열된 것들을 보면 아주 기본적인 생활 수칙들이다. 저게 규칙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해야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당연한 규칙들이 지켜지지 않아 다툼이 생기고 사고가 생긴다. 


규칙은 기본만 잘 지켜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잘"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숙제도 없다.


일단 아이들이 숙제를 안한다. 숙제를 안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벌을 줄수도, 방과후에 남길 수도 없다. 똑똑한 요즘 아이들은 이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숙제를 내고 검사하는 것으로 내 기운을 빼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제가 있어야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들 한다. 숙제를 잘 해오는 아이들은 성적이 쑥쑥 오르고, 숙제를 안해오는 아리들은 성적이 내려갈까? 그렇지 않다. 나의 경험상 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이 숙제를 잘 해올 확률이 높다. 아이들의 성적에 관여하는 것은 숙제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공부하려는 의지다. 이것은 내가 내어주는 숙제로 절대 생길 수 없다. 


이렇게 내가 숙제를 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숙제에 허덕인다. 바로 학원 숙제다. 학교 숙제는 안해도 학원 숙제는 죽어라 하는게 요즘 아이들이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끄적인다. 점심시간에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원 숙제에 치여 고통받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을 보면 참 씁쓸하다. 하지만 이 씁쓸함이 나의 건강한 학급운영을 집어삼키게 할 순 없다.


그래, 나는 숙제를 "못" 내주는게 아니라 "안" 내주는 거야.


위안 아닌 위안을 해본다. 


숙제로 쏟아야 하는 에너지를 아껴 수업 준비에 알차게 쓰고자 노력한다. 




셋째, 환경구성은 최대한 단순하게 한다. 


3월이 시작되면서 학급 환경구성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곤 한다. 초임시절 어떻게 하면 예쁜 교실을 만들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밤늦게까지 이것저것들을 만드느라 학교에 남아있기도 했었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도 여러가지를 구상하고 만들어 낸 기억이 많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나에게 딱 맞는 환경구성을 셋팅하게 되었다. 앞판은 게시판, 뒷판은 작품판. 이것이 끝이다. 멋진 타이틀이나 간판은 없다. 단순하게 구성된 나의 환경구성은 몇 해 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고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아이들 작품은 딱 뒷판에만 걸어둔다. 창가쪽에 건다거나 복도에 전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뒷판을 벗어나는 작품 게시는 최소한의 전시날짜만 채우고 걷어들인다. 단, 뒷판의 아이들 작품은 작품이 생길 때마다 바꾸어 준다. 


다른 환경 구성은 없다. 


칠판부착물도, 앞문 뒷문 안내문도,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 아이들 책상과 사물함, 교사 책상을 제외한 가구나 기물들은 모두 뺀다. 내 짐도 최대한 줄인다. 그리고 교실 곳곳의 묵을 때를 3월 2일 전에 미리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 둔다. 


이렇게 하면 공개수업이 있다던지, 우리 교실에서 회의나 연수가 열린다던지 하더라도 별다르게 정리하거나 청소할 거리가 없다. 


깔끔하게 정돈된 환경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한다. 






단순한 학급 경영을 위하여 내가 꼭 지키는 세가지다. 중요한 건, 흐지부지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한다는 것이다. 내가 "꼭" 하고야 마는 이 학급 경영이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이 튼튼한 울타리 속에서 자유롭게 생활한다. 아이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아이들의 학습성취도와 생활 습관에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세세하게 아이들이 가는 길에 화살표와 가림막까지 해가며 알려주려할 필요없다. 화살표와 가림막을 만드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작은 길로 많은 아이들이 지나가게 하려면 아이들도 다친다.


반면, 울타리가 없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은 멀리 나가면 길을 잃을까 두려워지기도, 영영 길을 잃어버리리고 헤매는 아이들도 있다. 


교사가 만든 커다랗고 튼튼한 울타리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데에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학급 경영은 나의 교실의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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