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당 수돗가에서 저녁 식사를 위해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엄마를 지켜 보고 있었다.
“엄마, 죽는 게 뭐야?”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엄마도 도통 기억을 못 하겠다. 다만, 죽음을 궁금해했다는 건 분명하다. 엄마의 대답도 뚜렷이 남아있다. 죽으면 엄마랑 만날 수 없다는. 그 말이 너무 무섭고 슬펐던 나는 엄마 옆에서 죽지 말라고 울었다.
죽음과는 거리가 멀게 보이는, 아직도 생기 넘치던 30대 후반의 엄마 옆에서.
아홉 살이 된 내 아들은 종종 알 수 없는 이유로 울고는 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낮잠을 달게 자다가도 문득 일어나 울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으며 얼룩진 얼굴로 그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엄마가 죽는 게 싫다며 울었다. 당시 나는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았고, 우는 아들을 업어줄 수도 있는 40대였다.
어린 날의 나를 떠올려 보면서 당시 아들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엄마가 어딘가 멀리 가버려 다시는 손을 잡을 수도, 등에 기댈 수도 없을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어린 단어로는 설명할 길이 없던 상실감 말이다.
1년 만에 병원에서 마주한 엄마는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기가 빠져나간 눈동자, 뼈가 앙상한 팔을 마주하니 겁이 났다. 아, 어쩌면 나는 곧 엄마 없는 사람이 되겠구나.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마당 수돗가에서 울던 때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엄마의 죽음을 상상해도 눈물을 참을 수 있는 50대가 되었다. 하지만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고 안쓰럽다. 너무 늦기 전에 엄마의 시간을 읽어 보려 했다. 그 마음이 이 글을 쓰게 했다.
기록을 의식하니 시간도 대화도 그냥 흘려보내게 되지 않았다. 내가 던진 말에 반응하는 엄마의 표정을 읽게 되었다. 옷을 고르러 가서도 어떤 색깔에 더 오래 손이 머무는지 보게 되었다.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한참 뒤의 나는 엄마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생각나지 않는 암담한 시간을 마주할 뻔했다.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아서.
국이 식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나이 든 부모가 산다는 건 안심되면서도 불편하다. 하루에도 연민과 부담, 이해와 짜증이 수없이 교차한다. 부모 자식 간에 이게 최선일까 싶은 회의도 들고, 가까이 오시라고 한 나 자신을 쥐어박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돌이켜도 나는 아마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이제는 나와 엄마가 50년 이상 해왔던 각자의 역할을 바꿀 시간이다. 엄마에게 좋은 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쇠한 엄마에게 좋은 보호자가 되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글이 인생 역할의 전환기에 선 엄마와 딸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노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