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요즘 엄마는 오른손을 다시 미세하게 떠신다. 몇 년 전 증세가 시작되었고 이를 완화시키고자 신경과 약을 계속 복용 중이었다. 이사 오신 직후엔 너무 기력이 없으시고 상호 작용도 어려운 지경이라 새로운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받게 되셨는데, 혈압이 매우 낮은 상태라 기존에 손 떨림 때문에 드시던 약을 조금 조절해야만 했다. 손 떨림을 완화시키기 위해 근육 이완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향으로 혈압이 낮아진다는 설명이었다. 우선은 혈압 문제가 시급하다니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약을 바꾸고 나서 두 달쯤 지난 이후부터 조금 앉아있을 힘이 생긴 엄마와 아파트 둘레길 산책을 시작했다. 처음엔 5분 정도 걷고 나서 길가 벤치에 앉아서 쉬어야 했다. 2주 정도 지나니 10분은 걸으실 수 있었다. 다소 힘든 경우도 있었는데 참는 것이 특기인 엄마는 어지간해서는 내색을 안 하시기 때문에 내가 안색을 잘 살펴서 중간중간 물을 드시거나 쉬게 해드려야 했다.
사실, 엄마의 이사를 마음먹었을 때 내가 꿈꾸던 풍경이 있었다. 이사오 실 집의 거실은 좁지만 아침에 햇볕이 가득 들어와서 무척 아늑한 느낌을 주었는데, 여기에 엄마가 쓰실 큰 탁자를 사드리고 싶었다. 거기에서 엄마는 책을 읽고, 아빠도 신문을 보시고, 가끔 손자들이 내려오면 편하게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상을 연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실에 소파와 TV를 두어야 한다는 두 분의 의견을 어찌할 수 없어서 '엄마의 책상'은 불발되었다. TV를 따로 방에 넣어두면 'TV 바라기'인 아빠만 동그마니 방에 '갇혀있을' 모습이 불쌍하다는 것이 엄마의 거부 이유였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의견만 주장할 수는 없었고, 결국 새로 이사 온 집에서도 예전 집과 다를 것이 없었다. 거의 하루 종일 거실의 TV 소리가 온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고, 큰 방이나 작은 방 어디에도 엄마가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할 공간은 없었다. 좁은 주방에 맞춰 벽에 붙여둔 2인용 식탁 위엔 온갖 약봉지와 주전자, 물컵 등이 상주하고 있어서 책을 펴기엔 정신이 사나웠다. 엄마, 자꾸 기억이 안 난다고만 하지 마시고 두뇌활동도 계속하셔야 해요. 책도 보시고 가계부도 쓸 수 있게 침대 옆에 아주 작은 탁자라도 사드릴까요?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뜻에 따라 큰 탁자의 꿈은 접었다. 대신 엄마의 산책길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로 했다. 그전에는 아파트 단지 담장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우리의 코스였는데, 이제는 산책로를 반만 걷고 후문으로 빠져나가 작은 개인 카페로 간다. 엄마는 차가운 것을 못 드시니 주로 따뜻한 수제 유자차를 사드리고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식사를 하신 지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산책을 하게 되면 간혹 스콘 등을 곁들이곤 하는데, 원래 엄마는 세끼 식사 외엔 주전부리를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아빠 간식으로 싸가곤 하신다. 집에 혼자 계시는 아빠를 위해 아메리카노 한 잔도 빼놓지 않으신다. 주문까지 하고 나면 카페 탁자 위에 엄마의 '공부거리'를 풀어놓는다. 이제부턴 여기가 엄마의 책상인 것이다.
카페 나들이를 시작하기 전엔 예전처럼 다시 책을 읽으시라 권했었다. 최명희 작가님의 <혼불>을 아주 좋아하시는 엄마. 예전에 전권을 다 읽으시고 작은 방 책장에 소장하고 계셨는데, 이제는 집중해서 글을 읽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셨다.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컬러링 북은 어떨까? 손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이 두뇌활동에도 좋다고 하니 적당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마침 우리 집엔 36색 색연필과 컬러링 북 세트가 있었다. 지난봄에 친구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났는데 그때 사온 화조도 컬러링 북도 새 책 상태로 있었다. 엄마 화장대 위에 올려두고 관심이 생기시길 기다려봤다. 색칠놀이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셨지만 엄마의 손 힘을 기르는데 좋다고 말씀드리니 가만히 밑그림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셨다. 자식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시기 때문에 그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면 아이들 놀이 같아 어색한 색칠하기도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분이다. 우리 엄마는.
엄마가 컬러링 북을 앞에 두고 앉아 어떤 색연필이 더 잘 어울릴지 신중한 표정으로 집중하셨다. 가스레인지 앞에 선 엄마, 거래처 일감 앞에 선 엄마를 보던 때와는 또 기분이 생경하면서도 보기 좋았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게 얼마만인지. 가족이니까, 엄마니까, 이제 나도 내 가족이 있으니까 하는 이유로 엄마의 얼굴을 무심하고 당연하게 흘려보냈던 것 같다. 탁자 건너편의 엄마는 매우 작고 메마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외할머니랑 제일 닮은 것 같아요. 그렇지? 나이가 들수록 엄마 얼굴처럼 되더라, 거울 볼 때 깜짝 놀라는 때가 많아. 고명재 시인의 시 중에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라는 제목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도 더 나이가 들어 거울을 보면 오늘의 엄마 얼굴이 나오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