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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찾아온 현실의 벽

완벽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by 제이피디아

완벽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행복'이란 단어,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어쩌면 행복은 목표한 곳이나 꿈에 그리던 순간에 다다랐을 때가 아니라,

머지않아 도착할 거라는 기대와 바람이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소풍 당일보다 소풍 가기 전날이 더 설레고 즐거운 것처럼요.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요?!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던 4월 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에 얼굴이 확 폈습니다.

미간 주름도 옅어졌고 눈빛도 한결 온화해졌거든요.

일 납기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동료나 고객들과 시름하지 않아도 되니

미소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직장 생활 동안 책이나 언론에 소개된,

소위 회사 관두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가 내게도 올 거란 기대에,

머지않아 그 기회들이 내게로 뚜벅뚜벅 걸어와줄 거란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게 되었어요.


얼마 만에 가져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던가?!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이제 날개 달고 훨훨 날아오르자!!


생각했고, 기대했고, 바랬고, 꿈꿨습니다.




퇴사하고 무얼 하며 시간 보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다음 4가지였어요.


1. 아침 운동

회사 다닐 가끔 새벽에 일어났는데요.

일찍 일어나 운동하거나 책 보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회사 다닐 때는 새벽 기상은 둘째 치고,

출근 버스 시간에 맞춰 간신히 일어나기도 버거웠죠.

아침형 인간이 되자 여러 번 다짐했지만,

매번 작심삼일로 끝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신기하게도 5시 전에 눈이 확 떠졌어요.

옷 갈아입고 씩씩하게 운동을 나갔죠.

두세 시간 탄천을 따라 걸으며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살짝 나는 땀과 가뿐 숨이 기분을 좋게 해 주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새벽 운동하는 거에 놀라기도 했고요.


2. 공공 도서관에서 논문 쓰기

운동 끝내고 오전시간 집에서 작업 좀 하고,

점심 식사 후엔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집은 휴식 공간으로 뇌에 입력되어 있어서인지 두세 시간은 작업하지만, 그 이상은 집중이 안되더라고요.

그때 찾은 대안이 공공 도서관이었습니다. 집에서 걸어 40분 거리의 도서관으로 노트북을 가방에 담아 들춰메고 걸어갔습니다.

도착해서는 논문 작업을 했습니다. 해외 학회지에 도전해 보고 싶었거든요.

가끔 도서관 문 닫는 음악 소리에 짐을 싸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지냈구나.'


3. 지난 TV 드라마 몰아보기

시간표를 짜 나름 알차게 보내려 애썼는데, 그러다 만사가 귀찮은 날이 한 번씩 생기더라고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지내자... 다짐했고 대개의 날은 그렇게 보냈지만요.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지내는 게 맞는가?

의문도 한 번씩 들었고요.


내 안에서 천사와 악마가 실랑이하는 것 같았어요.

sticker sticker
이전보다 더 열심히 지내야지. 이제 오롯이 너의 노력만으로 결과가 나오잖아.


천사가 이렇게 속삭이면 곧 악마가

그럴 거면 회사를 왜 관두었니? 수입이 적어지더라도 편하게 더 여유 있는 삶을 누리려고 그만둔 거 아니니?


가끔 오는 만사귀차니즘 때는 TV 드라마를 몰아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좋아해도 몰아보기를 하지는 않았어요.

회사 다닐 때는 하루 2~3시간 TV 시청도, 퇴근 후 거의 개인 시간 다 쓰는 거잖아요.


해가 쨍쨍할 때 시작해 어둑해질 때까지 2~3일, 드라마만 보며 지냈습니다.

이때 이준기 배우의 작품을 주로 몰아 보았는데요,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4. 브런치 글쓰기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신청서를 보내고, 메일함에서 몇 년 전 지원했던 이력도 다시 보았어요. 그때 물론 안되었죠. 그 기억조차 잊어버렸었네요.

회사 업무 외 작업은 모두 기타 등등으로 낮은 우선순위였죠. 그때는 거의 모든 일에 간절함이 없었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생각이 강했어요. 회사라는 든든한 뻑이 작용한 거죠.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 전업 작가는 생각도 안 했거든요.

그렇지만 좋아는 했습니다. 여기저기 메모도 많이 하고, 일기도 계속 쓰고 있었고, 핸드폰 메모장은 글로 가득했고, 노트북에 쓰다만 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물론 그냥 막 쏟아낸 거라 결과물의 퀄리티는 영 안 좋았습니다.

간절함을 가득 담아 브런치 작가 재신청을 했고, 운 좋게도 승인이 났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글 쓰기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좌절이 들더라고요. 셀프평가, 피드백 결과. 뭐, 그랬죠.


하고 싶은 순간으로 채운 완벽한 일상이었습니다.


생활이 조금씩 적응될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관두고 수입원으로 두 곳에 투자했는데, 모두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겁니다.

월급이 끊기면 생계유지를 위해 최소한의 금액을 벌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투자했는데...

코로나가 한창 피크던 시절에 집합 금지와 해제를 반복하며 수익률이 거의 제로가 되었어요.

투자 원금은 날아갔고 수익률은 O!

사면초가 상태가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어떻게 두 곳 모두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졌습니다.


앞서 시간을 주로 보낸 4가지 일들은 당장의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니 수입을 기대할 수 없었고요. 돈 벌기 위함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니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대출이자, 공과금, 관리비, 각종 보험료, 세금 등 재정적 마이너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용돈과 식비야 내가 줄이면 되지만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은 무슨 수가 있어도 내야 하는 거잖아요.

수입이 없어지는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대학교 강의료 수입이 있지 않았나고요?

네, 있었죠. 그런데 그 강의는 매년 1학기에만 개설되어 2학기는 사실상 공강 상태였지요.

또, 강의료는 용돈은 되지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8월 중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아르바이트던 파트타임 잡이던 무언가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습니다.

부랴부랴 대학교 강의 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8월 중순은 이미 다음 학기 비전임 교원 채용이 끝난 시점이었어요.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대학교는 학기제로 운영되니 채용과 운영에 일정 주기가 있고, 비전임교원 채용은 대개 5~6월에 이미 진행되었다는 걸요. 학교들이 2학기 준비가 끝낸 시점에 주변을 어슬렁 거린 거죠. 2학기 기회는 이미 끝나있었습니다.


8월 말,

막막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퇴사한 바로 직후는 만족 지수가 급상승했는데, 이후 만족지수는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해 반년이 채 가지 않네요.



억울했습니다.

지금까지 남에게 해코지하거나 나쁜 짓하며 살지 않았는데,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인생은 내게 이리도 잔혹하단 말인가?


그렇지만 우울해할 틈도 없었습니다.

에잇 ic,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 일을 다시 하라는 신의 계시구나!


퇴사하고 3개월이 지나 다시 생활 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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