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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Sep 20. 2022

전략 수립 : 지나보면 명확하다


  임원 보고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오랜 경력과 연륜의 임원회의에서 비즈니스 현황을 분석해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잘해야 중간이었던 것 같다. 몇 장의 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해 수 주일 넘는 시간을 투자해도, 회의 시간이면 부족한 것들과 놓친 부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비유하자면 중고등학생이 대학생 앞에서 발표하는 격이지 않을까 한다. 


  주니어 시절에는 선배들의 보고를 위해 Back data를 분석해 지원하였고, 시니어가 되면서 잠차로 안건을 받거나 만들어 자료를 준비하였다. 아마도 자료 준비와 발표 횟수는 수 백 번 정도 일 것이다. 그중 가장 잊히지 않는 발표가 있다. 발표 당시 임원들의 진지한 토론을 유도했고, 함께 준비한 부장님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나름 고심하고 고심해 분석하고 보고했던 내용이 3~5년이 지나 부족한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가 ㅇㅇㅇ을 미리 알았더라면 보고 내용이 좀 달라졌을까?'
  '우리가 미래를 좀 더 현실적으로 준비해 치명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는 일이 줄지 않았을까?'


  기회가 오는 데로 기회를 만들어 닥치는 대로 새로운 이론을 습득하고 주워 담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았던 시니어 초기 시절이었다.



   어떤 시장이던 '경쟁'이 존재하고 어떤 산업이던 '경쟁자'가 있다. 그래서 '경쟁우위 (Competitiveness)'라는 전략 경영 용어가 학계에서는 어렵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 대해서는 제법 많이 알려진 마이클 포터의 5-force 이론이 있는데, 산업에서의 경쟁 구도를 5가지인 기존 산업의 경쟁자, 대체재, 공급자, 구매자, 잠재 진입자로 구분해 제시하였다. 

  이 이론은 현시점에서의 현상을 관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최근처럼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 동적인 환경(Dynamic Environment)을 나타내지 못하고, 'so what'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여 일부 비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업 경영 전략의 시발점은 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산업의 경쟁 구조를 파악해 비즈니스 위치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5-force 모델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Porter의 5-force (출처: 4차 산업혁명시대의 비즈니스 모델 유형, 정상희&정병규) 


  지금 나의 경쟁자는 누구인가(기존 경쟁자)? 

  머지않은 미래에 새롭게 시장에 들어올 잠재 진입자는 누구인가(잠재적 경쟁자)? 

  우리를 혹은 우리 제품을 대체할 만한 건 무엇일까(대체재)? 

  지금 시장은 구매자가 힘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공급자 교섭력이 있는 곳인가?  


  매번 이에 대한 질문하고 답하지는 않았지만, '경쟁' 혹은 '경쟁자'를 분석해야 할 때면 첫걸음으로 이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려 분석을 시작하면 도움이 되었다.



 2012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사장님 주관 전략 보고 회의를 위해 현 시장을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보고를 준비했다.


  고객사의 Value chain(공급망)에 대한 이해도에서 Vertical Integration(수직 계열화) 현황, 우리가 공급하는 반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x축으로 하고, 우리와 거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y축으로 잡았다. 여기에 중요 고객의 위치를 표기했으며, 원의 크기로 각각의 규모를 나타내 기업 간 상대적인 크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1> 2012년 고객 분석


  이 그래프의 장점은 고객이 누구인지, 그들의 규모(잠재적 구매량)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각 고객들의 사업 영역을 통해 신규 진입의 난이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4개 분면에 해당하는 집단을 어떻게 운영 혹은 공략할지 전략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


  당시 "1 사분면 고객은 지금처럼 잘 관리해서 확대하겠습니다. 그리고 2 사분면에 있는 고객에 진입하여 1 사분면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로 전략 방향을 보고하였는데, 대표이사님이 추가적으로 "3 사분면에 있는 회사들은 그냥은 들어가기 어려우니 우리만의 무기를 만들어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진입 계획을 세워라" 코멘트를 주셨다. 우리가 공급하는 반제품을 이미 내재화한 3 사분면 기업들은 진입 기회 자체가 없을 거라 생각하였는데, 대표이사님은 2가지 관점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진입 가능하다 대신 우리만 줄 수 있는 차별화 기술이나 제품을 준비해라'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표이사님은 까칠하지 않으셨고 기분 좋게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 홀로 이 보고를 곱씹으며 당시 분석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발견하였다. 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걸 놓쳤다. 즉, 기업들의 포지션이 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기업과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데,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만약 움직일 수 있다는 가정을 했더라면 결론으로 보고한 전략 방향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실제 3년 뒤 아래 그림과 같이 기업들은 움직여 동일 기준으로 분석하면 위치를 달리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이 기업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어 정적(Static)에서 동적(Dynamic)인 것에 대한 연구가 증가 추세이기도 하다.


<그림 2> 2015~6년 고객 분석


 크게 변한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1 사분면에 위치했던 A, B 기업은 반제품을 내재화해 4 사분면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2 사분면에 있던 H기업은 반제품 공급사를 인수해 3 사분면으로 이동했다.

 3 사분면에 있던 Y기업은 반제품 사업영역을 spin-off 하였다.


  만약 <그림 1> 분석 당시 우리에게 최악 혹은 최고의 상황을 미리 상상해 보았다면 어땠을까? 당시 우리에게 최악의 상황은 완제품만 생산하던 1 사분면의 고객 기업들이 반제품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체 내재화하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이었다. 반제품이 핵심 부품이라면 충분히 A, B기업 경영진은 내재화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고려하지 않고 유리한 상황만을 쳐다보았다. 


  실제 A, B기업이 반제품을 내재화하여 공급량이 줄어들었고, 공급 가격 역시 많이 떨어졌다. 내재화하였으니 그들도 일정 수량 이상으로 공장을 돌려야 생산성이 나오기 때문에 외주를 많이 줄여야 했으며, 또 가격에 있어서도 제품을 다 만들고 마진을 더해야 하는 우리 반제품 판매 가격과 완제품 회사에서는 만들 때 드는 제조원가만을 고려하는 가격 구조와 경쟁해야 하니, 제품의 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A, B기업이 1 사분면에서 4 사분면으로 이동하여 공급량이 줄었고 공급 가격도 많이 내려 사업이 힘든 구조가 되었다.



  이후 전략 공부를 하다 미래 예측에 사용되는 '시나리오 분석법'을 접하게 되었다. 미래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데, 없다고 그냥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냥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기업 경영 환경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서, 그러한 예상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가 시나리오 분석법의 주요 내용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는 한 가지 상황만을 고려하지 않고 최고의 상황, 최악의 상황, 그리고 그 사이의 어떤 상황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가지 상황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각각의 상황일 때, 기업은 어떤 전략을 수립해 대응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지 뽑는 것까지 해야 한다. 시나리오 기법에서 도출한 최고와 최악의 상황은 현실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중간의 어디쯤을 선정해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과거에 시나리오 기법을 알았다면, 현상 분석에서 한 단계 나아가 미래의 최악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면, 그 상황과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고민해 방안을 한두 가지는 마련해 두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면 어느 날 갑작스레 맞닥뜨린 위기를 대처할 방안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과거를 바꿔 현재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해 보는 상상을 했다.




  일을 할 때 보면 학교에서 배웠거나 책에서 본 이론이 완벽하게 현업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부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이론은 결론을 내기 위해 환경과 변수를 통제해 일반화한 것이지만, 현실은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그것만이 가진 특수성이 있어 이론과 현실의 적합 정도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론들은 사업이 맞닥뜨린 현상을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해야 할 때, 내용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사고하는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에, 많이 알면 알수록 분명 도움이 된다 생각한다. 몰라서 놓쳤던 전략 보고에서 이론의 중요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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