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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Sep 25. 2022

이론의 응용: 경쟁사를 고객으로

 

 이직 준비할 때면 그동안 직장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이력서 작성을 위해 어떤 업무를 했는지,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어떤 직원이었는지, 곰곰이 되돌아본다. 

  그리고, 면접 준비를 위해 기여한 성과는 무엇이었는지, 예상 질문을 생각하고 모범 답안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이직 면접 당시 '그동안 업무 중 성공했던 프로젝트나 일 경험'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는데,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담당했던 제품의 주요 고객은 북미(미국, 캐나다)와 유럽 지역에 있었다. 북미 지역 고객 판매는 계속해 증가하였고, 새로운 고객도 지속적으로 확보되는 등, 안정적으로 비즈니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유럽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기존 고객들 매출도 답보 상태였고 수년 공 들여도 신규 고객 확보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유럽 시장은 규모도 크고 의미 있는 고객들이 많아 결코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몇 년째 유럽 시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영업 담당자와 마케팅 담당자들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시도했지만, 오랫동안 SCM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유럽에 신규 진입자가 발을 들이기는 만만치 않았다. 


  영업 법인장 M이 C사에 제품을 공급하는 ODM* 비즈니스로 유럽 시장에 진입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C사는 우리와 SCM 상에서 동일 포지션에 있는, 완제품 회사에 반제품을 공급하는 곳이었다. 직접적인 경쟁사였던 것이다. M 부장은 유럽 시장 경험이 많고 C사에서 몇 해 전 이직해 왔다.


* ODM: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개발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판매망을 갖춘 유통업체에 상품 또는 재화를 제공하는 생산 방식 - 네이버 지식백과


  처음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연 C사가 이를 수용할까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이 얘기가 나오고 얼마 뒤인 8월 말 C사와 M 부장의 미팅이 이루어졌고,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생겼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1차 미팅에서 후속 미팅 약속이 이루어졌다.

  

  11월에 해외 출장 계획이 잡혔는데, C사 담당자들과 미팅도 확정되었다. 나름 기대와 열의로 C사에 방문했는데, 당시 미팅에 참석한 C사 담당자들 모두 시큰둥한 반응으로 질문을 해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고 미팅에 임하는 태도가 그리 친절하지 않아 또다시 반신반의했다. 정말로 C사는 우리와 비즈니스를 할 의향이 있는 건지, 참석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C사 진입, 이 ODM 비즈니스에서는 우리가 더 간절한 상황이라 판단했기에, C사 참석자들의 의향이 없어 보이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부에 부정적인 모습을 전달해도 별반 달라질 게 없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독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용히 결심했다. C사 진입을 시도해 보기로. 우선 의사결정권자들이 판을 깔아 비즈니스 가능성이 공유되었으니, 우리가 잘만하면 진입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졌다. 


  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새로운 시도였다. 반제품을 완제품 고객에게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반제품 만드는 경쟁사에 ODM 제품을 공급해, 그들이 완제품 고객에게 판매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시장에 우리 로고가 적힌 제품을 직접 볼 수는 없는, C사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다. 유통망이 절대적으로 취약하나 대량 생산에 이점이 있는 우리와 탄탄한 유럽 고객 기반을 가진 C사의 협업은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되었다. 


  출장에서 복귀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약간은 시야를 좁혔다. C사에 진입하는 것만 생각했다. 


  그 시작점으로 C사와 관련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았다. 퍼즐 한 판을 만들기 위해 여러 루트와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그동안 유럽 출장자 출장보고서에서 C사 관련 정보들을 찾았고, 인터넷 검색으로 C사 관련 기사들을 모두 모았다. 마침 C사에서 대해 잘 아는 유럽 직원이 한국에 교육을 오게 되어, 별도 회의 시간을 잡아 이것저것 질문해 정보를 확보했다. 매출 트렌드, 손익 상황, 제품 방향, 내부 분위기, 제품들 특징, 조직 구성, 사업에 어떤 고민들이 있는지 등등, 숫자적인 것뿐 아니라 정성적인 내용까지 많이 많이 모아 적었다.


  다음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다양하게 접근해 분석했다. 분석된 자료들을 마치 한 조각의 퍼즐화하여 한 판을 맞추기 위해 수집과 분석을 반복했다. 그렇게 C사에 대한 퍼즐 한 판을 만들었다. 


  이제 그들의 부족한 퍼즐 조각이 어디인지, 우리가 타겟팅할 부분을 찾았다. 그들의 Pain Point (애로 사항)는 무엇인지, C사는 어떤 점이 향상되면 좋을지, 어떤 요소를 가질 때 경쟁 우위에 서 장 경쟁력을 더할지, 그들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문제를 찾으려 고민했다. 


B2B에서 공급자-고객 관계는 서로 win-win이 되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여러 프로젝트와 여러 고객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C사가 잘 되어야 우리도 잘된다는 확신은 견고했다.


  C사의 부족한 곳 중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어디를 포지셔닝할지 찾아보았다. 당시 공략 포인트로 잡은 건 '가격, 가성비'였다. 그때까지 C사는 'Made in EU' 정책을 고수하며, 동유럽에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그러는 사이 중국산 저가 제품이 대거 유입되어 가격 경쟁력이 취약해졌다. 물론 C사는 동일하게 'Made in EU'를 공급해 주기를 요청했지만, 유럽 생산보다 월등히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안한다면 한 제품 정도는 정책을 배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시아(중국, 한국)가 유럽보다 제조 경쟁력 면에서 더 나은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정보 수집과 분석과 고민으로 어디를 공략할지 정하고 어떻게 공략할지를 찾은 후, 실행 방안을 준비했다. 경쟁력 있는 가격은 2차적으로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사항이라, 우선적으로 협의할 제안을 준비했다. 고객 요청 사항을 입수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는 안을 구체적으로 선정해야 했고, 내부팀들이 달성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했다. 


  우선 C사 홈페이지에서 제품 정보를 모두 조사해 엑셀에 정리했다. 어느 라인업을 목표로 제안할지, 기존 제품과 비교해 신제품으로서 얼마큼의 성능을 추가적으로 제시할지, 고객에게는 어떤 포인트로 차별점을 제안할지 등을 고민해 안을 준비하였다. 


  제안서를 만들어 고객에게 보내고, 서너 번 주고받고를 반복하며 양사 간 간극을 좁혀나갔다. 고객에게 제안하고 협의해 사양을 최종 확정할 때까지 내부 팀들과 어떤 솔루션으로 접근할지도 계속 토론했다. 도전적 목표를 내부 팀들이 어떻게 달성할지 조율해가며 함께 진행했다. 제품과 기술에 대해, 고객 요청 사항과 내부팀의 현황 간의 적합점을 찾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해야 했다. 


  8월 C사와 현지 법인이 첫 미팅, 11월 실무 담당자 미팅, 이듬해 1월 사양이 확정되어 구체적인 프로젝트 논의, 3월 경 공급이 확정, 8월 초도 양산 시작. 이렇게 꼬박 1년에 걸쳐 C사에 물건을 공급하게 되었다. C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어 초도 공급까지 1년이 걸렸다.



  마케팅에 STP 전략이란 게 있다. 어떤 시장에 새로이 진입하거나 기존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 높이기 위해 주로 활용하는 전략 툴이다. 


  예를 들면, A 군이 빵집 오픈 준비를 할 때, 먼저 시장 조사를 해 시장 세분화(Segmentation)를 해야 한다. 전체 시장은 너무 광범위하고 소비자의 공통된 니즈와 욕구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기준을 잡아 시장을 분할하는 것이다. 빵집을 오픈하고자 하는 지역의 경쟁 빵집과 소비자를 조사해 현재 시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분석 기준은 가격대, 소비자들 연령대, 소비자들 선호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다음, 세분화한 시장 중에 구체적으로 어디를 목표로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프리미엄 시장인지, 가성비 좋은 시장인지, 삼십 대를 타깃으로 할지, 청소년이 목표인지 등 진입할 시장을 정하는 게 타겟팅(Targeting)이다. 

  이후 타깃으로 한 시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A군의 빵집이 자리 잡을지를 정하는 게 포지셔닝(Positioning)이다. 만약 가성비 좋은 시장을 타겟팅했을 때,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싼 집으로 할 것인지, 경쟁 빵집보다 동일 가격 제품을 크게 만들어 공급할 것인지, 좀 더 명확히 하는 색을 입히는 과정이다. 



  C사에 진입하려 할 때, 어떻게 접근하고 추진할지 고민할 때 STP 전략이 생각났다. 광범위한 정보에서 출발해 기준을 잡고 분석해 대상 시장을 좁혔고, 그 대상 영역에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가 진입할지는 이 전략의 전개 흐름을 따랐다.


   Segmentation에서처럼 고객 조사를 가능한 한 많이 하고, 그것을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고객사 영역을 분할한 뒤, 어디가 가장 그들의 아킬레스 건인지 찾았다. 고객사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알아야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찾은 고객사 니즈에 모습을 입히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디를 타겟팅할지 정했다. 

  

  여기서 적용하고 진행한 방식이 STP 전략의 목적과 분석법은 아니지만, 그것의 논리적 전개 방식을 따랐다. 대상은 달랐지만, 이전에 알고 있던 이론의 개념과 논리 전개 방식을 모방해 새로운 방식으로 비즈니스에 접목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관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하나는 C사를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경쟁사를 고객사로 전환하는 ODM 프로젝트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방법이 막막했던 미션을 알고 있던 이론에 접목하고 그것의 논리 전개를 모방해,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 


  처음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희박한 가능성임에도 절박한 마음으로 낮은 가능성이더라도 믿고 추진하였다. 고객사와 소통하는 과정에 내부 부서들과 협업으로 막연했던 목표를 무사히 달성해 진입에 성공했던 것, 좋은 경험인 동시에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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