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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Sep 15. 2022

3C 분석 :실패 제품은 쓰다

새로운 시도는 실패를 수반한다

  입사 3년 차 연구원에서 마케팅으로 업무 변경을 한 뒤, 새로운 업무를 잘하기 위해 마케팅 관련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내게 마케팅 업무는 흥미로웠다. 업무와 병행해 시중 마케팅 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내외부 마케팅 강의를 들으며, 그렇게 실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주요 마케팅 이론은 뒤지지 않을 만큼 실력을 배양했다고 여기기도 했다. 자만이었다.


  마케팅으로 전배 온 이후 5년 동안 여러 번 조직을 이동하여 상품 기획부서로 배치받았다. 그동안 마케팅 내에서 지원 성격의 업무를 하다가 제품을 직접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이전 마케팅 부서는 제품을 직접 운영한 것이 아니라, 전사 조직의 마케팅 조직으로 간접적으로 제품을 운영했다. 

  담당 제품이 생기니 의욕이 뿜 뿜 솟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동안 익히고 좋아했던 마케팅 지식을 맘껏 펼칠 수 있겠구나, 하며 한동안 밤잠을 설쳤다. 

  '기회를 준 회사와 그룹장님께도 꼭 보답해야지, 꼭 대박 내어 진가를 보이리라!!!' 

  다짐에 다짐을 굳히느라 침대에 누워도 쉽사리 잠들지 못한 기간을 꽤 오래 보내었다.


  단계별 그동안 익힌 다양한 이론을 따라 하나하나 숙제하듯 분석하고 결론을 내며, 그렇게 신제품 만들기 위한 일을 해 나갔다. 시키지 않았지만 고객 샘플에 손으로 쓴 메모지를 동봉하여 보냈고, 회사 내 여기저기 부서들을 만나 그들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냈으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임원들에게 진심을 다해 보고하고 설득하여 그들의 지지를 받으려 애썼다. 제품이 나오기 전 단계부터 시작해 끝마칠 때까지, 어떤 과정을 수행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에 자신 있게 일을 진행했다. 


  이렇게 추진하여 제품 양산 전까지 준비를 마쳤다. 보통 양산 준비가 완료되면 초기 판매 제품은 미리 생산해 두었다. 양산 초기에는 이런저런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발생해 생산 리드타임이 1.5~2배 정도 길어지는 일이 많아 고객 주문을 최대한 빨리 공급하기 위해 최소 수량을 창고에 미리 준비하였다. 꽤 많은 물량을 내부 승인을 받아 생산해 창고에 재고로 두었다. 날개 돋친 듯, 여기저기서 제품을 달라고 아우성칠 상상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퇴근 버스에 탑승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부끄럽지만 단 하나도 돈 받고 팔지 못했고 일 년 뒤 창고에 두지도 못해 모두 폐기 절차를 밟았다. 


  돌아보면 미리 점검하고 시그널을 감지했어야 할 상황이 있었는데, 의욕과 열정에 빠져 그것들을 보지 못하였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을 뿐, 한 번씩 걸려오는 브레이크 신호를 애써 못 본 척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사업부 실적이 좋을 때였고 내부 절차를 따라 진행하였기에 문책을 받거나 물질적 책임을 지지는 않았다. 이후 여러 번 신제품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맡아 진행했던 이 제품이 가장 크게 실패하여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고 아직도 심장이 덜컹한다. 열의가 컸던 만큼 실패가 컸고 상처가 오래 남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디에서 실수를 하였는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끝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주니어 시절의 이 대실패 경험으로 두 가지 큰 교훈을 얻어 이후는 스스로 늘 기준으로 삼았다.


  먼저, 시선이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제품이라면 의례 내부와 외부에 대한 시선의 비중이 3:7 혹은 4:6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9:1 정도로 내부에 무게를 둔 채 업무를 했다. 마케팅의 핵심 중 핵심은 시장과 고객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기에, 아예 배제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쪽에 시선을 두긴 하였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바로 지도의 목적지만 보았을 뿐 그곳에 어떻게 다다를지에 대한 방법을 놓쳤다. 상품 기획하여 제품을 출시한 경험이 없어 방법에 대한 안목이 부족했다. 전략은 있었지만 전술이 부족했던 것이다. 

  아래 그림처럼 기업이 제품으로 시장에 가려고 하면 연결하는 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다리는 만들어놓았는데 외부와 잇는 마지막 지점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결국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장과 고객은 굉장히 광범위한 영역이며, 어떤 기업이던 모든 곳에 한 번에 다다를 수는 없다. 어디로 갈지 정했다면, 그곳에 어떻게 실제 발을 내디딜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놓쳤던 것이다. 해당 시장에서 사업하고 있고 고객이 있는 경우라면, 이미 확보한 고객과 시장의 네트워크가 그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당시 신사업부였던 담당 제품의 특수성도 있었던 것이다.

<그림 1> 내부와 외부의 연결 다리

  이후는 새로운 제품을 기획할 때는 고객을 찾아 VOCs를 꼭 듣고 진행한다. 불특정 다수 고객을 쳐다보기보다는 대표 몇 개 고객(Specific customer)을 선정하여 그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신제품 콘셉트를 제안하여 토론할 고객, Proto-Sample이 나오면 테스트하여 피드백을 줄 고객 등 신제품 진행 단계별 협업할 수 있는 고객 리스트를 머릿속에 두고 그들과 소통하며 제품을 발전시켜나갔다. 이렇게 한 이후 Zero 판매의 아픔은 없었고 Lead user(선도적 사용자)의 반응은 대개 시장 반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경영에서 새로운 조직 형태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애자일 조직, 린스타트업... 등. 새로운 조직의 특징은 기업 외부, 그러니까 시장과 좀 더 밀접하게 붙어 고객의 요구사항과 니즈를 내부에 민첩하게 반영하려는 것이 이런 조직의 핵심이다. 

  첫 번째 교훈은 시장과 고객에 더 밀착해 제품을 기획하고, 그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반응해, 민첩하게 대응하며 신제품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들으면 쉬울 것 같지만, 이후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지 않는, 이를 스스로 깨닫지 못해 실수하는 것을 보았다. 직접 깨닫지 못하면 누군가 조언을 해도 소용이 없다.


  다음은, 개인적 친분과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은 별개로 구분해야 하는데, 개인적 친분의 깊이가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 반영 정도와 상관있었던 것이다. 이건 정말 아마추어 같은 실수이지만, 사람인지라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을 더 믿고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일이 잘못되고 나서 '누가 그때 그러지 않았냐', '난 당신이 하자는 데로 했다' 등 변명을 하게 된다. 물론 독박을 쓰는 분위기에서 억울한 마음에 이런 핑계로 '나는 문제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제대로 했다'라고 주변에 호소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처세술 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하고, 내 주변에 생기는 문제의 핵심 원인은 나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제품 외형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상사와 문의했는데 고문과 확인하라 하였다. 평소 자주 업무 코칭을 받았던 친절한 일본인 고문이 가진 일본 기업들의 데이터를 보며 외형 디자인을 확정해 금형을 팠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 일본과 우리가 타깃으로 한 미구주 시장에서의 디자인 형태는 달랐다. 끊임없이 '왜 디자인이 이러냐', '디자인이 우리와 맞지 않다'는 얘기를 고객들로부터 들었다. 


  또한 가격을 정할 때, 가격 담당자로부터 타깃 판가와 목표 원가를 받았는데, 당시 많이 친했던 개발 담당자가 준 원가가 타깃 판가 수준이었다. 왜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지, 개발 담당자 말을 듣고 가격 담당자를 설득하여 목표 판가와 원가를 조정하여 제품을 진행하였다. 어쩌면 당시 더 쉬운 길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장은 냉정하고 정직했다. 개발자가 준 원가를 기반으로 낸 판가(Cost based price)로는 시장에서 팔 수 없었다. 우리 제품에 금 띠를 두른 들, 무슨 소용이랴. 사는 사람이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하고, 금 띠 두르지 않고 파는 경쟁사, 금띠를 미세하게 두르고도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경쟁사들이 시장에 포진해 있었다. 고급지게 만든 우리 제품은 그냥 한 번 보기에 좋았던 것이다. 


  이후는, 친한 사람들과 업무 할 때는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되, 다양한 방면에서 그것을 의심하고 분석해 판단하는 습관을 들였다. 친분은 친분이고 업무는 업무니까. 절대적으로 누군가를 믿거나 따르는 결정으로 업무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되, 나름대로 검증하고 확인하는 방법을 찾아 꼭 거치게 되었다. 일이 실패하니 그 친분 또한 유지되지 못하였다. 냉정하다는 평가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일은 일이니까. 이것이 서로에게 좋은 win-win 방식이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변명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려 하는 자세로 바꾸었다.


  'B2B 마케터 II'의 앞 단에 있는 시장 조사 업무와 관련되어 '3C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 기업 환경을 분석할 때 Customer-Competitor-Companay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개념이라 여겨진다. 

  한 톨도 팔지 못한 첫 제품의 실패의 이유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면, 결국 Customer(고객)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들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Competitor(경쟁사)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디자인과 가격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며, Company(우리 기업)에 지나치게 편중된 시각을 가졌다. 고객에게 득이 되고 경쟁사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내부가 좀 더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해 나아갔던 것이다. 이후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유심히 관찰하고 <그림 2>처럼 이들 셋 간의 무게를 균형 있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신제품을 기획해 진행했다. 가진 정보의 정도와 각각에 대한 관찰 정도를 엇비슷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그림 2> 3C




  요즘 기업 문화 개선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자주 언급되는데, 필요하다 생각한다. 실패는 성공으로는 배울 수 없는 교훈과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더 크고 긴 성공을 위한 방법을 찾게 해 준다. 유명한 농구 선수와 야구 선수들의 남다른 기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성공하고 크게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작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물론, 실패 후 스스로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여유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실패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오는 것이니까. 회사에서 그냥 묻어가기 전략이라면 절대 실패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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