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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Dec 09. 2022

삶 속에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프-파이어족 #5

어려움  
쉬운 길로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다.
이 생각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 앙드레 지드

어느새 조금씩 中, 정용철 지음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생각이 멈춘 듯했다. 바쁜 일과를 해내야 할 때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익숙한 공간과 반복된 시간을 벗어난 여행은 사고를 온전히 새롭게 한다.

생의 중반기에 인생 여행을 하고 있다, 목적지와 일정이 없는.


주 7일 하루 24시간이 통째로 주어졌다. 바쁜 현대인으로 살아내느라 지나쳤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일'이란 무엇일까?
'일'은 어떤 의미인가?


이십 년 남짓, 일하며 살았음에도 아직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조직 속에서의 삶 말고 다른 인생을 찾기로 정한 뒤, 인생 여행길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일이 내게 필요한가?


힘겹게 잡고 있던 회사라는 끈을 놓은 5월.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숨어버렸다. 집에서 홀로 일상을 보냈다. 책 읽고, 논문과 글 쓰며... 열심히 사느라 치인 시간들이 위로되는 듯했다.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일에 스트레스받지 않고,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니 빈 잔이 차오르듯 조금씩 내적 안정이 생겼다.


하지만,

두 달, 석 달이 지나니 조금씩 달라졌다. 혼자만의 시간도 좋았지만, 세상 속에 섞이지 않는 삶에서 불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원히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거실에서 바라본 도로를 지나가는 차, 길을 걷는 사람, 연일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상점들.

바깥세상은 유리막이 쳐져, 보이지만 가 닿을 수 없는.. 투명하고 큰 막이 있는 것만 같았다.


일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 해야겠다. 내게는 세상 사람들과 얽혀 성과를 쫓아가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로 스스로 존재를 확인해야 했다.


홀로 고요한 삶을 보내는 자연인 삶은 만족을 주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생, 여전히 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일이란 무엇인가?


일은 돈 버는 활동인 것일까. 회사에서 일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았는데, 여전히 내게는 금전적 보상을 위한 것이어야 할까.


돈 버는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기업에서 일하며 돈 버는 사람, 정부기관에서 공적인 일하며 돈 버는 사람, 연기나 노래를 하며 돈 버는 사람, 운동으로 돈 버는 사람, 글을 쓰거나 웹툰을 그려 돈 버는 사람, 빵이나 치킨을 만들어 돈 버는 사람, 자선단체에서 타인을 도으며 돈 버는 사람,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돈 버는 사람...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었다.


회사에서 참고 일했던 이유의 절반은 돈이기도 했다. 돈이 일의 중요하고 큰 이유임에 틀림없다.


일은 자아실현의 수단이라 했는데 이 역시 일부는 맞는 거 같다. 일할 때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일하며 나를 발견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일을 통해 성장하고 한 단계 성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조직에서의 일 역시 돈 외 만족과 성취를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어 관계를 푸는 게 힘들고,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고, 개인보다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야 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조직의 일 속에 내가 파묻혀 색이 바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하지만 일 없는 삶 역시 불안해 '내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생각으로 일을 정의해 보았다.

세상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그들과 교류해 성과를 만들고,
그 결과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것


사회적 관계, 성과(성취감), 금전적 보상... 내게 일이 필요한 이유, 다시 일해야 하는 이유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가장 어렵고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일 한다는 건, 나의 역량과 조직의 필요가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가 오는데, 커리어 방향을 틀어 일을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3개월, 길어도 6개월이면 새 길을 걷지 않을까 했는데, 6개월 훌쩍 넘긴 지금, 여전히 방향을 찾고 있다. 내 분야에서 열심히 했고 성과도 내었지만 회사를 나오니 그다지 크게 활용되지는 않았다. 회사 내에서 스펙은 써먹을 만했지만, 회사를 나오니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새로 쓴 이력서에는 학력 세 줄과 회사 경력 세 줄이 다였다. 회사 밖에서 일 경험 없음, 자격증 없음, 기타 없음.. 20년 경력임에도 이력서 빈 공란이 많았다.


대체로 다른 영역에 있던 이를 반기지 않았고, 이전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동종업계가 아니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기업들은 40대에게 새 일자리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신규 채용이 활발한 몇 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산업계에서 이직하려면 주니어이거나 동종 분야이거나, 잘 아는 누군가 소개해 주거나... 셋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 난 셋 다 안되었다.

견고한 조직 틀을 유지하기 위해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동종 산업/동일업무)을 원했고, 유연하게 스며들 젊은 세대를 선호했다. 회사 일 외 다른 것, 강의나 외부 활동하는 건 대체로 허용되지 않았다.

기업 조직 속으로 들어가기 힘들 거란 걸 알았다. 나 역시 하루 열 시간 이상 묶여 지내는 삶을 원치 않기에 이곳은 떨쳐버렸다.


정부출연기관이나 연구재단 역시 유사 업무 경험이 없는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었다. 우수 논문상 받은 학회 추천으로 학회나 연구재단 위원을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 평가위원을 신청해도 대체로 탈락. 유사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회사 경력이 그들에게 인정되지 않았다. 내게는 그들이 이상한데, 그들에게는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대학교 강사 면접 볼 때면 교수들 눈빛에서 '회사를 20년 다녔으면 계속 다닐 것이지 이 사람은 왜 여기로 오려는 것일까'가 느껴졌다. 그들과 시작이 다른 나의 경력을 반기지 않았다. 이곳은 특히나 일자리의 공급과 수요가 불균형한 곳이라 초행인 내게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한국의 많은 분야가 전문성이 고도화되어 같은 분야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다. 적응과 성과의 리스크가 낮은 이들을. 새로운 변화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한 분야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은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기회를 잡기는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회사 생활 동안 에너지의 5%는 퇴사 후를 위해, 준비하는 데 사용했어야 했는데...


역시나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다만 천천히 느리게 왔다. 커리어 방향을 전환하고 정상 궤도오르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1년 차곡차곡.


6개월 지날 즈음, 앞으로 일에 대한 윤곽은 그렸다. 지금은 형체를 만들고 색을 칠하는 중이다. 언제 완성될지는 아직. 유화처럼 계속 덧칠해야 할지도.


얼마 전 육아로 수년간 쉬고 다시 연기활동을 시작하는 중견배우 인터뷰를 보았다.

단역 오디션 수십 개 보고, 작은 역을 맡아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연기 경력으로 조연 오디션을 보았고, 점차 역의 비중을 키워갔다.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았지만, 오면 확실하게 잡았던 것이다. 경력은 노하우를 갖고 있으니.


이전 분야에서의 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출발선에 서기로 했다. 중견 배우처럼 마음먹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단역 오디션에 될 때까지 도전하기, 다른 세상이 봐줄 이력을 우선 만들기로 했다. 다음은 역할과 비중을 늘려 조연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인지도가 쌓이면 오디션 보러 가지 않아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면 이전 조직에서의 경험과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이 서로 부딪혀 커다란 불빛을 낼 거라 믿는다. 시너지를 낼 것이다.


초심으로, 처음으로, 출발선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포기하지 말고...




대학 졸업 후 시작한 일, 오랜 시간 대다수 사람이 가는 방향을 따라 살아왔다. 그 속에 나는 얼마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인생 여행길에서 일을 다시 생각하고 고민해, 해석을 곁들여 정의 내려 보았다.


'나의 일'로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걸음이 기대보다 느리고 예상보다 천천히이지만, 걸어가 볼 것이다.


★ Self-Questions
1) 나에게 일은 왜 필요한가?
2)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3) 내일을 설레게 만드는 일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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