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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Dec 13. 2022

상황 변화, 관계의 재설정

하프 파이어족 #6


'인간은 사회적 동물 - 아리스토텔레스'는 익숙한 말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주어진 관계인 가족을 벗어나 사회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지난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이란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시절 인연은 불교의 업설과 인과 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시절 인연(時節因緣)]


20대 초반 대학시절, 매일 붙어 다니던 단짝은 이제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다. 직장과 사는 지역이 달라지니 연락도 만남도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20대 후반 직장 생활에 적응할 즈음, 옆 파트에 앉은 동료와 말이 잘 통했다. 일과 삶을 나누며 매일 보았는데 이제는 연락처도 없어져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른다.

30대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할 때, 우연히 휴게실에서 만났던 학우, 크고 작은 학교 일을 상의하고 얘기하며 매일이 멀다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졸업한 이제는 몇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상황과 공간이 바뀌니 관계의 깊이가 달라지게 되었다.


한 번의 이직 8개월 만에 그만두고, 자발적으로 관계를 재설정하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 매일 보고, 가끔 따로 시간을 내 만났던 동료들과 자연스레 거리를 조정하게 되었다. 조정해야만 했던 것일지도.


보통 이직하면 전 직장 사람들을 가끔 만나 식사와 술을 한 잔 하며, 회사 근황과 여러 사람들 근황을 업데이트한다. 현 동료로서 나누지 못한 속이야기도 나누며 관계를 이어나간다.

회사를 옮겨도 유사 업종에 근무하니 언젠가는 업무로 연결될 수 있고, 정보도 주고받으며, 인맥 관리 겸 연락을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다.


나 또한 조직을 떠난 누군가를 만나 상황을 업데이트했고, 회사의 누군가를 통해 안부를 전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직은, 전 직장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다. 커리어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시간, 간절하게 선택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어쨌든 경쟁 속에서 튕겨져 나온 것만 같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얘기를 가십처럼 주고받는 것도 싫어 최대한 전 직장 사람들과 연락을 뜸하게, 거의 하지 않고 만나자는 연락도 에둘러 거절한다.


오랜 고민과 고심 끝에 20년 간 달려온 길 말고 다른 길을 찾기로 결정했지만, 이후 삶이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

여전히 그 길에서 고군분투하며 뛰는 그들을 만나면,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앞에 커다란 분리막이 쳐진 것 같았다. 현재 중요한 것과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달라 마치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일과 동료들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는데, 내 머릿속은 두 번째 커리어를 찾는 일에 집중해 있었다.

서로 다른 인생, 다른 생각, 각자 고민. 만나면 피로가 몇 배로 몰려왔다. 연락을 안 하게 되었고, 만남을 피하게 되었다.


다만, 나의 소식을 가십처럼 전달하지 않을 사람, 진심으로 나의 상황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 타인에 대한 얘기를 쉽게 옮기지 않는 사람, 회사보다 개인적 친분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들과로 인연의 크기를 한껏 줄여놓았다.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 가볍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 그냥 영혼 없이 부럽다를 연발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는 잠시 관계의 휴장기를 가져간다.


상황이 바뀌니 관계도 바뀌게 되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이니, 인연을 이어가야 할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잠시 쉬어가야 할 사람으로 구분이 되어버렸다. 구분을 해버렸다.


가끔 전 직장의 상황이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모두들 잘 지내겠지'라며 궁금증을 떨쳐버린다.


7개월 차, 아직, 새 길을 찾는 삶안정기에 접어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사람은 생김새, 손 지문처럼 저마다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다른데, 대다수 사람들이 가는 길만을 쫓으며 살아왔다.

더 늦기 전에 새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는데, 자신감과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이정표를 찾아야 한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려면 내적 담금이 필요하다.




삶의 상황이 크게 바뀐 때, 나의 변화가 가십거리가 되기 쉬울 때, 인생의 새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에는 '잠수 타기'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궤도 이탈한 내 삶에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고, 자존감이 높은 나였음에도  자신감을 잃었다.

이전 환경과 공간에서 맺어진 인연은 새 길을 찾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고 타인은 그냥 타인일 뿐이다. 나 역시 그러하고.

인생의 물길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작은 물길은 조금의 힘을, 큰 물길을 바꾸려면 온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지금은 지치지 않고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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