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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Dec 15. 2022

고전과 클래식


이십 대의 나는 가벼운 아이였다. 철학의 심오한 주제보다 오늘 메뉴에 더 관심이 많았고, 사회 부조리보다는 옆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것에 집중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허락된 이십 대, 골치 아픈 고민 없이 그냥 그냥 가볍게 오늘을 사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책과 음악 취향도 그러했다. 묵직한 고전보다는 현대 소설을 읽었고, 우아한 클래식보다는 활기찬 댄스음악을 들었다.



클래식 음악에 서서히 빠진


이십 대가 되니 친구들은 대중가요에서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다. 색이 명확한 새로운 종류의 음악으로 취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대중가요 파였다. 유명 가수의 신곡과 가요톱텐 인기곡은 다 꿰고 있었고, 음치였지만 많은 곡을 노래할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대 초반 노래가 주로 나오는 '밤과 음악사이'나 '토토가' 같은 클럽에 가면 모르는 노래가 없다.


지금은 달라졌다. 최애 라디오 프로그램은 CBS에서 9시에 방송하는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클래식 채널이다. 음악이 듣고 싶을 때면 유튜브 뮤직에서 바흐나 쇼팽의 곡을 주로 듣는다. 언젠가부터 클래식 음악을 가장 많이 듣고 있다. 명확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스며들듯 옮겨갔다.


이십 대때 클래식을 듣는 어른을 보면, 답답해했다. 신나고 멋진 가사의 대중가요를 듣지 않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어른을 볼 때면, '진짜 클래식이 좋은가, 아니면 괜히 우아 떠는 건가'라며 혼자 삐뚤게 바라보기도 했다.


요즘 K-POP 음악은 귀에 너무 낯설다. 빠르고 정신없고 귀가 아파 한 곡을 채 다 듣지 못한다. 가사가 들려오지만 의미가 명확히 읽히지 않는다. 신나는 반면 정신없고, 흥을 돋워주지만 가끔은 소음 같고, 가사를 찬찬히 읽으면 시 같지만 무어라 노래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K-POP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음악도 시대 트렌드를 따라 변해왔는데, 나는 아니었나 보다. 오히려 오랜 시간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은 클래식에 아주 느린 걸음으로 옮겨간 것이다.


밝고 경쾌한 모차르트 음악, 서정적이고 애잔한 쇼팽곡, 씩씩한 바흐 음악, 추운 겨울의 라흐마니호프 곡... 작곡가를 많이 알지도 못하고, 귀가 익숙한 곡의 이름도 잘 모른다. 음악적 지식도 따로 익히지 않았고... 그냥 듣기만 한다. 그런데 계속해 그곳으로 빠져들고 있다. 좋아하고 있다.




클래식은 대중가요처럼 주류에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우아함, 안정을 주는 잔잔함, 시간이 갖는 성숙함이 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 삶 속에 이어져 왔나 보다. 이제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나 보다.


나이 들어 보니 그랬다.

젊었을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나로 변하기도 했다. 애써 외면하던 이들의 모습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전 소설은 늘 마음속에


삶을 지탱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책'이라 대답할 것이다. 소설은 소설대로, 전문서적은 그것대로 사고와 삶의 방향 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역시 그러하고.


한 권의 책에는 작가의 평생이 담겨있다. 그 한 권을 읽음으로써 저자가 평생 동안 고심한 하나의 주제에 대한 혜안을 얻는다. 이처럼 가성비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책에 대한 태도와 관심 역시 나이가 듦에 따라 달라졌다.


대학 여름 방학 때면 도서관에서 현대 소설을 손에 잡히는 데로 가져다 읽었다. 매 학기 수십 권의 현대 소설을 읽었다.

취업 후에는 베스트셀러에서부터 끌리는 제목의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때 산 책들은 대부분 출간 십 년이 되지 않은 도서들이었다.


얼마 전 집 정리를 하다 파일 속에 색 바랜 A4 용지를 발견했다. 희미해진 글씨들 속, 독후감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들이 수십 장 있었다. 그런데, 책 제목이 너무나 생소하다. 분명 읽었으니 독후감을 썼을 텐데, 마치 처음 들어보는 소설의 제목이었다.

읽는 당시는 재미있어 기록으로 남겼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서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혔나 보다.


이십 대때부터 사다 모은 책은 약 2천 권에 가깝다. 에세이, 소설, 경영, 마케팅, 전공서적, 심리학 책, 고전소설집 등등. 이사 때마다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 수 십 권씩 버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사의 가장 큰 짐이다.


하지만, 절대 버리지 못하는 책이 있다.

고전 소설.

청소년 고전소설부터 최근에 산 고전문학전집까지, 이 책들은 버리지 못한다. 청소년 고전소설은 일반 버전을 갖고 있지만, 역시나 버리지 못한다.


왜일까... 고전소설의 주인공과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듯하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을 때의 섬뜩함,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을 때의 충격,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주인공의 쓸쓸한 걸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의 당당한 안나의 모습이 생생하다.


책을 통해 만난 고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동일하게 느껴 읽는 동안 고통이 함께 했다. 집중해 읽지 않았다가는 수십 페이지 다시 돌아와 읽어야 했다.


고전 소설에 빠져들수록 왜 고전인지 알게 되었다. 왜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손에 들려 읽히는지 알겠다.

하지만 읽는 동안은 힘들다. 단 한 단락도 집중하지 않고 읽을 수 없고, 작가가 처절하게 써 내린 주인공의 상처와 감정. 이를 고스란히 느끼는 고통 없이는 끝마칠 수 없다. 복잡하고 답답한 심정일 때는 고전소설을 읽을 엄두를 낼 수 없다. 하지만, 들이는 노력만큼 내적으로 돌려주는 것이 고전 소설이다.




최근 2~3년 동안은 일 년에 한두 권 고전소설을 읽을까 말까 한다. 심정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라 핑계를 대어 본다. 하지만, 늘 마음속에 있다. 다음에는 꼭 고전 소설 한 편 읽어내자고.


진중한 삶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면 고전 소설 한 권 집어 든다. 그리고 나를 고요하게 만들어 집중해 한 장 한 장 넘겨 읽는다. 그 시간 속 절대 상상하지 못한 경험하지 못한 내적 세계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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