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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Mar 18. 2023

하마터면 불 낼 뻔, 긴장 풀어진 일상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온전한 삶


회사에서 일할 땐 늘 120프로 긴장 상태였다.

빨리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하나하나 챙겨야 빵구가 나지 않았다.


자리에서 딴짓을 잠시 하면 어김없이 상사가 말을 걸어온다.


"뭐 해? 전무님 지시인데 이것 좀 해줄 수 있어?"


뭔가 하고 있지 않으면 새로운 게 떨어졌다.

자의로 타의로, 사무실에서는 항시 긴장해 있어야만 했다.


매일 이렇게 일하고 도착한 집, 30%쯤은 넋이 나간 사람이다.

재테크, 자기 계발, 운동, 집청소... 더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짧은 이직 후 완전 퇴사.

긴장을 주는 사람도, 긴장 유지 이유도 사라졌다.

잔뜩 붙은 긴장이 상처딱지처럼 떨어져 나가던 첫 1~2주,

얼굴에 미소가 들고 표정에 생기가 배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절대적 상황은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성을 갖는다.

분명 좋았는데 어느 순간 상처가 되고,

분명 득이었는데 어느 순간 해를 끼치고 있다.

그림이 앞인지, 숫자가 앞인지, 어떤 게 맞는지 헷갈리게 된다.



퇴사 한 달이 지난 주말, 초등 동창 두 명이 놀러 왔다.

일요일 오전 '범죄도시 2' 영화를 예매하고 집을 나섰다.

근처 순댓국집을 첫 번째 목적지로 운전해 갔다.


식사를 끝내고 영화관을 향해 가려던 차 안,

친구 둘이 차창 밖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 미역국 집도 있네."

"맛있겠다"


짧은 얘기 사이,

생각이 났다.

미역국을 데우려 인덕션에 올려놓았던 것이 ㅠ

한 시간가량이 지났다.


방향을 틀어 집으로 가는 십 여분,

불 난 건 아닐지,

소방차 오고 난리 났으려나.

냄새에 예민한 고양이는 괜찮을까,

온갖 걱정에 운전대 잡은 손이 떨렸다.

신호는 왜 또 계속 걸리는지.

급할수록 돌아가랬지만,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이다.


아파트 동 입구 한쪽에 차를 세우고 뛰었다.

집 앞 엘베를 내리니 탄 냄새에 목이 칼칼해져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은 덜덜,

드르륵, 현관문이 열렸다.

집 안은 매캐한 냄새와 연기로 자욱하고,

냄비, 뚜껑, 냄비 안의 미역은 모두 시커먼 색으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불로 번지지 않았고, 고양이는 베란다에 있었다.    


"응, 다행히 불이 나지는 않았네. 환기 좀 시키고 바로 내려갈게."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알렸다.

어마어마한 사고를 친 나에 대한 실망으로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긴장에 웅크린 심신이 회복된 1~2주가 지나니 동전이 다시 뒤집어졌다.

긴장 풀린 날이 길어지니 일상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들쭉날쭉해졌다. 강제가 아닌 자유에 맡겨진 기상은 흐트러졌다.

큰맘 먹은 날은 새벽 5시에, 어떤 날은 7시에, 술 한잔 한 날은 9시에, 종잡을 수 없었다.

하루 시작이 틀어진 날은 시간 보내기의 하루가 되기도 했다.


긴장이 풀어지니 집중모드로 들어가는 시간도 꽤나 길어졌다. 예전 일 속도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자주 자책하게 만들었다.

내가 뭐 하고 있나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 내게 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었다.


비록 돈 버는 일을 중심으로 하지는 않지만, 해외학회 논문을 쓰고, 브런치에 글도 틈틈이 쓰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대학교 강의도 진행하고 있었던지라, 아예 할 일을 끊어버린 건 아니다.


다만 돈 벌기 위한 활동이 아주아주 낮아졌고, 내게 강제를 줄 조직과 사람이 없어진 것뿐이다.


회사 다닐 때는 상사, 동료, 때론 고객사, 그리고 일이 나를 긴장 모드로 넣었는데, 이런 외부 환경이 없어졌다.


이 긴장감이 가끔 아니 자주 버거웠는데, 제로가 되니 실수하고 집중을 못하게 된다.


긴장이란 걸 다시 장착해야 했다.

이번에는 외부환경 때문이 아닌, 스스로 적정 긴장을 유지해 생활해야겠다.

적당한 긴장 강도를 찾고 해가 떠 있는 동안 유지하는 방법 찾기.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생활을 온전히 만들어 가자, 위로 겸 다짐을 했다.


평일 서울시립미술관 나들이. 붐비지 않는 전시장에서 작품 감상은 감각을 깨운다.


타 버린 미역국 냄비, 일주일 철수세미로 밀어도 결국 회복 실패. 재활용 박스로 가버린 실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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