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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May 24. 2023

먹고사는 게 매일의 고민이다


초중 방학 때 집에 있을 때면, 엄마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오늘은 뭐 해 먹나~~"

아마도 매일 이 고민을 하며 지낸 건지도 모른다.

학기 중에는 엄마가 싸 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엔 밥상에 앉기만 해서 엄마 고민을 못 들었을 뿐.


지금까지 나의 삶은

"뭐 해 먹지, 보다는 뭘 골라 먹을까?"에 가까웠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로 밥 해 먹을 필요가 없었다.

취직 후에도.

회사는 아침, 점심, 저녁, 늘 3~7개 메뉴를 제공해 그선택해 먹었다.


사직서 쓰기 전 가장 고민한 세 가지 중 하나는 '회사 밥'이다. 농담 반 진담 반!

이십여 년, 회사 밥에 삼시 세끼 의지하다 보니, 혼자 끼니 해결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회사밥은 지금 생각해도 메뉴의 다양성과 맛, 모두 훌륭하다. 거기다 무료이기까지.


출근하지 않는 주말은 외식으로, 가끔 하는 요리는 힐링 이벤트였다.




퇴사하고 혼자 세끼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회사를 관둔 홀가분함, 낮 시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만족감에 첫 달은 푸짐하고 우아하게 요리해 먹었다. 엄마가 준 김치류와 밑반찬에 서너 개 반찬을 더해 식탁에 가득 깔아놓고 먹었다. 거뜬히 7첩 반상을 넘어, 건강식과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신나게 요리해 식탁에 차리고 뿌듯해 남겨본 한 컷


레시피 찾아 빵을 만들고 각종 나물무침에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재미있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장을 본 뒤,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쳐 접시에 담아내면 뿌듯했다. 내 손 끝에서 나오는 음식이 신기했다.

여유 있게 먹는 혼밥 시간을 맘껏 즐겼다.



하, 지, 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렇게 두어 달 해 먹으니 몇 가지 불만(?)이 생겨다.

- 시간이 너무 걸렸다. 점심 준비해 먹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저녁 시간이 된다.

  깨어있는 시간의 1/4이 식사에 들어가니,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식비가 계속해 증가했다. 푸짐하게 먹는 식비로 지출되는 액수가 매주 늘어났다.  백수 생활 중이니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 버려지는 음식 양이 늘었다. 한 번에 삼사인분 만들어 남은 양은 냉장고에 넣었는데, 자주 존재를 잊어 상해있었다. 이렇게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리는 양이 늘었다. 또, 몇 끼 반복해 먹으니 질리기도 했고.

- 그 나물에 그 밥, 매일 비슷한 메뉴에 조금씩 싫증이 왔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려면 꽤나 관심과 에너지가 필요한데, 새로운 요리로 모험을 떠날 에너지가 없어졌다.

- 귀찮아졌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만족도가 계속해 내려갔다.


새벽 배송이나 반찬 가게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편하고 맛은 있지만, 자주 먹기에는 센 양념과, 비용 부담과 재활용 쓰레기가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퇴사 2달이 지나니 오늘은 무엇으로 끼니를 때울까, 뭘 만들어 먹어야 하나... 매일의 고민이 찾아왔다.

자주 엄마에게 전화해 무얼 해 먹어야 할지 묻고,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으며,


오늘을 살기 위한 요리가 시작됐다. 식욕이 아닌 생활 에너지를 위한 음식이 필요해졌다.



그렇다. 홀로 세끼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요리에 남다른 취미도 없고, 먹는 거에 진심인 사람이 아닌지라.! 들이는 노력에 비해 만족도가 계속 내려갔다.

엄마 곁에 살아 끼니 걱정 없이 지내는 친구가 처음으로 부러워졌다.





퇴사 일 년, 여전히 '오늘은 무얼 먹고살까' 하는 게 매일의 고민이다. 어린 시절 접한 엄마 고민이 전이한 것처럼.


일 년 동안 퇴사자에 적응하며 변한 나의 식사 준비는 다음과 같다. 

- 한 끼에 먹는 메뉴 수를 줄이고 양을 늘렸다. 7첩 반상이 웬 말, 이제는 반찬 3개면 충분하다. 대신 한 번에 먹는 밥과 반찬의 양을 늘려 한 끼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있다

- 밥은 3~4일 치 한꺼번에 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양을 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고 있다. 

- 국과 반찬 요리의 레시피는 크게 다르지 않아, 지금은 요리 시간이 처음의 절반으로 줄었다. 

- 하루 하나의 메뉴를 만들어 맛있게 먹기! 비슷한 메뉴가 반복되지만, 하루 하나씩  따뜻한 새 요리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중이다.

- 가끔 반찬가게나 만들어진 요리로 기분 전환. 그래도 귀찮거나 입맛이 없다 싶으면 집 아래 반찬 가게에서 서너 개 사 오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냠냠 감사히 먹고 있다.



아직도 내 삶의 패턴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홀로 요리라는 걸 해 식사를 준비하고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변화된 삶에 적응하며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나를 칭찬해 본다.

삼시 세끼를 제대로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해보니 또 못할 건 없다. 하지만 누군가 해주면 왕땡큐 ^^


이렇게 하나씩 퇴사 후 삶에 적응해 왔고, 적응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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