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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Sep 18. 2016

치매

큰병원에 있을 때에는 "우리 어머니가 자꾸 깜빡깜빡하고, 한 얘기를 반복하고, 길을 잘 못찾아요..."를 주소로 "우리 어머니가 진짜 치매인가요 아닌가요",를 확인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진단은 여러 검사를 해서 종합적으로 내려지는 것이므로 그 안에서 내가 하는 일은 객관적인 정보의 수집정도...에 불과했다. 환자를 만나보면 일상생활이 안되는 치매까지는 아닌, 그 이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정이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치매라는 질환에 대한 보호자의 이해도도 높고,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 일찍 병원을 방문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증상에 대한 명료한 대답, 치매인가 아닌가, 그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조금 달랐다.

병원과 지역 특성상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편인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이 병원에는 단순한 진단을 위해서 오기보다는 행동문제를 가지고 오는 분들이 많았다. 너무나 자명하게 치매인데 치매라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보호자들도 계셨다. 단순히 "우리 어머니가 이상해요....."를 주소로 와서 보니 병실조차 혼자 못 찾고, 병원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심한 도둑망상, 폭행이나 욕설같은 행동문제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보호자가 잠깐 없는 사이 다가가서 이야기하려는 나를 보고 자기를 해치려고 한다면서 다짜고짜 잡아패고 쥐어뜯는 할머니도 계셨다. 병원이 자기를 가두려 하고 기억력에 전혀 문제 없는데 입원시켰다면서 환자복을 벗어던지고 나가려는 할머니도 계셨다. 도망가는 할머니를 쫓아쫓아 병원을 몇시간을 헤매고 다닌 적도 있었다. 쫓아다니는 동안 내가 결혼을 했는지 애는 있는지 한 스무번쯤 물어보셔서....스스로 치매임을 입증해 주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병원에서는 유독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선생님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죠?"

한번은 어머니를 모시고 온 따님이 울면서 나한테 하소연하였다.

"엄마 얼굴을 하고는 있는데 엄마는 아닌 것 같아요.... 엄마가 저러는 게 이해가 안돼요. 엄마인데...우리 엄마인데... 저도 힘들고 지치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맞는 걸까요? "

치매 환자가 행동문제를 보이기 시작하면 가족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한다. 기억력이 서서히 나빠지는 것은 다시 말해주고, 챙겨주면 될 일이다. 그도 지루하고 고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 조절이 안되고 화내고 욕하며 때리고 부수면 가족들은 속수무책이다. 행동문제가 생기면 데이케어 센터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오롯이 가족의 몫이 된다. 그렇다고 피해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니 죄책감이 앞선다. 그래도 어머니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 손에 맡기냐며 맹목적인 봉양을 하려 한다. 자신의 생활은 뒷전으로 한 채로. 


그래도 딸은 좀 낫다. 그래도 엄마니까,로 어떻게든 눈가리고 아웅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며느리가 보호자로 와서 같은 질문을 경우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치매지원센터 홈페이지를 적어주곤 했다.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며느리이건 속으로 욕하고 있을 며느리이건 상관없이 내가 줄수 있는 건 홈페이지 주소뿐이었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어서 대신 울어줄수도 대신 욕해줄수도 대신 짐을 지어줄수도 덜어줄 수가 없다.  


치매 진단을 받더라도 사실 치료방법은 딱히 없다.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진행을 늦추게 하는 약이 있다고 실컷 설명하면서 약을 복용을 권유드리기는 한다만 실제 진행이 늦춰지는 안늦춰지는지 알 길은 없지 않는가. 약 먹는다고 극적인 효과를 바라면 절대 안된다.

행동문제에 대해서 증상을 조절해 본다고 약을 써보기는 하는데, 귀신같이 약이 듣는 사람도 있지만, 전혀 효과 없는 사람도 있다. 약이 부작용이 많아서 노인분들에게 쓰는 것도 제한적이다. 


TV에서 노인방문요양서비스 선전 하는 것을 보았다. 치매 할아버지가 화장실도 못찾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노인장문요양서비스를 하면서 좋아졌다.....며 할머니 손을 붙잡도 웃고 있는 것이 광고의 골자였는데.... 할머니의 웃음에 희망이 생길 법도 한데 나는 너무나 갑갑한거다. 


치매는 너무 고약한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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