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5 일기
너는 항상 투덜댔다. 일요일에 학교 나와서 공부하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학교에서는 주중에 남은 재료 몽땅 넣고 팔팔 끓여준다고.
나는 네가 만두전골을 먹는 모습을, 먹는 순서를 아주 뚜렷이 기억한다. 내가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네가 먹는 모습은 질릴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오늘도 만두전골이라고 투덜대면서도 그 안의 만두 세개를 보물인마냥 아껴두었다가 제일 마지막에 먹곤 했다. 건더기 다 건져 먹고 나서 휑한 국물 위에 놓인 세개의 만두를 나는 큭큭 웃으면서 놀려대곤 했다. 애기처럼 아껴먹는다고. 그러면 너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맛있는 것을 아끼고 저장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라면서 얼척없는 항변을 시작하곤 했다. 매번 듣는 얘기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그 이야기가 나는 너무 재밌어서 사실 만두전골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ㅡ고 하면 너에게 혼나겠지. "뭐라고 만두전골 나오라고 기도했다고!!!!너땜에 만두전골을 먹게된거몀니으ㅏㄹ미나ㅓㅡㅐㅑㅕ" 으악 조금 미안하다.....
만두전골을 입에다 어찌어찌 쑤셔 넣은 날에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으악 내 배가, 내 입이 만족하지 않아!!!!~~"를 외치면서 그 옆의 매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정말정말 맛있는게 땡길 때에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그냥저냥 참을 만 할 때는 육백원짜리 체리마루를 먹곤 했다. 체리마루에 든 체리가 진짜 체리인지, 호두마루에 든 호두가 진짜 호두인지 뭣도 없는 토론을 하면서 말이다. 이 때 먹는 아이스크림이 여름의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답답한 내 가슴의 유일한 시원함이었다. 아마도 너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이 아이스크림의 끝에는 또다시 다섯 뼘 책상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허락된 즐거움을 한껏 물고 있을 때만은 말많은 너도 조용해졌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도서관을 향하는 계단에서 우리는 항상 한숨을 내쉬곤 했다. 저 멀리 보이는 잿빛 건물이 우리가 또 들어가야 하는 끝없는 블랙홀처럼 보였으므로.... 먹고 공부하고 먹고 공부하고의 생활의 반복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아무 죄도 없는 도서관에 엄청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의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더이상 쳐다도 보기 싫은 도서관 건물이었다. 건물이 너무 못생기고 허름하다고 무생물에 대한 적대감을 분출해버렸다. 그게 도서관 잘못도 아닌데!!! 여름인데 에어컨도 제대로 안틀어주고 사람은 많고 발냄새 땀냄새 찌린내 난다고 침튀기면서 중도에 대한 불평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게 화낸대고 해서 중도가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렇게 학교 욕을 하다가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 보곤 했다. 높디 높은 여름의 하늘은 도서관 건물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구름한 점 없는 맑은 파란 색이어서, 우리가 가야하는 도서관을 순식간에 더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너는 마치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죄수처럼 슬픈 표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새가 모이 한번 먹고 하늘한 번 쳐다보듯이 너는 아이스크림 한번 빨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한숨 한 번 쉬고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도서관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걸어올라갔다.
도서관 앞에 도착하면 뜨거운 여름 햇살과 높은 습도로 체리마루는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그러면 너는 허겁지겁 녹고있는 밑부분부터 햝아먹기 기술을 시전했다. 혓바닥을 낼롱낼롱 내밀면서 햝아먹는 네가 너무 웃겨서 보고 웃다가 내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서 뚝뚝 떨어져 버렸다. 그러면 너는 떨어져버린 내 아이스크림 국물을 보면서 그러게 왜 빨리 안먹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건 내탓이 아니라 날씨탓이었음에도 나는 아이스크림을 왜 한방울도 남김없이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들었어야만 했다. 너는 진짜 먹는 걸 남기는걸 싫어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아이스크림을 남기는 걸 싫어했다.
아아 그리고 드디어 도서관에 들어갈 시간이 왔다.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것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너는 다 먹어버린 아이스크림 막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막대기에 배어있는 아이스크림의 마지막 흔적을 빨아내었다. 그 맛은 엄청 떫었다. 떫기만 하면 좋겠지만 아마도 그 안에 배어있는 화학약품도 몸에 엄청 안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막대기를 떠나보내기 싫어서 오래오래 그걸 씹고 있었다. 아직 난 다 안먹었는데? 하면서 중도 앞 벤치에 주저 앉아서 중도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도 곧 그 안에 들어갈 거면서.....킄킄
기억해보면 나의 학교생활은 저런 기억 뿐이다. 매일매일 한숨쉬는 나날의 연속이었고,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워 죽을 것 같았다. 공부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때 그 시절의 하늘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때 그 시절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올려다 보았던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때 그 시절이, 분명 내게는 힘들었던 그 시절조차도 빛나보이게 만든다. 아이스크림 먹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던 그 때가, 그 시절이, 분명 어두웠다고 생각했던 나의 청춘이 너무나 아름답다. 학관의 이천오백원짜리 만두전골이 너무나 그립다.
그리고 '너'가 그립다.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은 '너'로만 가득하다. 나의 모습이 너의 모습이었고 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더이상 말할 것도 없어서 맨날 한얘기 또하고 또 하다가 나중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던 나의 친구야. 매일 열두시, 다섯시 반에 도서관 앞에서 만나 밥을 먹으러 가던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잘 살고 있니? 나의 학창시절은 내 모습보다는 네 모습으로 가득차 있다. 내 기억속의 너는 참 이쁘게 반짝이고 있구나
나의 청춘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서관에서 헤매던 그때 그 기억조차도 아름다워지는 때가 분명 있다.
오랜만에 너한테 전화해서 수다떨어야지
전화받아랏 뿅!
( 201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