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할 권리 아니고 의무

by 화이트골드



나의 첫 지점은 적당히 바쁘면서도, 실적도 꽤 잘 나오는 지점이었다. 또, 내가 신입이었기 때문에 일을 배우기 바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손에 일이 익어갈 때쯤, 인사팀에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아직도 서울 지점 발령을 원하시나요?'


'네, 갈 수 있으면 가고 싶습니다.'



그렇다, 처음에 나는 당연히 서울에서 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서울의 지점 중 하나로 발령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입 연수 도중, 인사팀에서 SOS를 청했다. 지방의 지점 할당 인원만큼 채용했지만, 도중에 입사하지 않겠다는 결원 인원이 생기면서, 급하게 지방 지점으로 인원 충원이 필요해졌다며. 본가가 지방인 나를 불러, 혹시 처음에는 지방에 근무할 수 없겠느냐고. 지금 생각하면, 사실 내가 거기에 꼭 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 또 부모님과 다시 살아보겠어? 라며, 그리고 회사에서도 이런 것들이 추후 인사고과에는 도움이 되겠지.



그래서, 첫 지점은 지방으로 발령받았지만, 6개월마다 하는 인사평가에서 희망지점은 항상 서울의 지점으로 작성했었는데, 그렇게 근무한 지 1년 6개월쯤 되어가는 인사이동 시점에 결국 나는 서울로 지점을 이동할 수 있었다.






처음 지역본부를 바꾸고 나서는, 지점 발령을 바로 받지 않았고, 본부 소속으로 관내 여러 지점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주재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지점을 이동할 때마다, 나는 굉장히 환대받을 수 있었다. 인원이 필요한 지점에서 새로운 충원을 환영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여러 사람들과 알아갈 수 있도록, 인사팀에서 나름 배려해 준 것 같았다.



한가한 지점에도 가보고, 정말 바쁜 지점에도 가보고, 여러 지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제일 바쁜 지점을 가게 되었는데, 가기 전에 한 선배가 그랬다. 진짜 거기만은 피해야 한다며,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는 열악 점포라며.



그 바쁜 지점에 주재근무를 하러 처음 간 날, 약간의 긴장감과 경계심이 있었다. 물 밀듯이 들어오는 손님들, 항상 쌓여있는 대기인원. 동네가 오래된 구도심이면서, 주위에 은행은 우리 지점밖에 없는 동네.


직원들의 응대가 약간은 차갑게 느껴졌다. 약간씩 다들 화가 나 있는 느낌이랄까?


'일단, 여기 왔으니까 최선을 다하자, 빨리 손님 한 명씩 처리하자!'



나는 그래도 손이 빠른 편이었는데, 도무지 이 지점의 대기인원은 줄 생각을 안 했다. 그래도 난 주재근 무니까, 여기서 열심히 하고, 다른 지점으로 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내 계획과는 달리, 지점장님의 눈에 들어 버린 나는 그 지점으로 정식 발령을 받게 되었다.






바쁜 건 너무 바쁜데, 또 경영성과 실적은 안 나오고, 너무 힘든 지점이었다.


그렇게 점점 내 성격도 예민해져만 갔고, 내 마음을 스스로 갉아먹는 것 같이 느껴졌다. 동료들도 처음 이 지점에 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 있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물론 지점이 바쁘고 힘들수록 동료애는 끈끈해져 갔지만, 감정 소모가 많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건 내가 꿈꾸던 모습이 아닌데...'


옆을 돌아보면 10년 뒤 내 미래가, 또 그 옆을 보면 20년 뒤 내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내가 20년 뒤에도 이렇게 사람에게 시달려서 살아야 한다고..?'


나는 못하겠다. 이렇게 내 정년퇴직의 꿈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나는 항상 대답했다.


'행복을 멀리서 찾지 말고, 지금 현재 이 순간 행복한 감정을 느끼자'


그래서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잠을 자는 시간 외에, 내가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이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게 나한테 맞는 일인가?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내 모습이 맞을까?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아마추어 같았다.



원래 나는 행복에 대한 역치가 낮은 사람이었다. 그냥 하루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거나,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하루의 끝을 불만을 토로하며 잠들고, 매일 반복되는 이 순간이 지속된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퇴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 행복해야 하는 건 권리가 아니라 일종의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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