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것들

by 화이트골드



이직을 할까 하고 찾아보니, 은행 경력을 갖고 이직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신입공채를 다시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라이선스를 취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퇴사할 수 있는 그런 무기를 가지려면, 내가 능력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그런 대안으로 세무사 시험을 떠올렸다.



일단 나는 학부 시절 회계학 교양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고, 기본 회계원리 등 공부를 해보기는 했지만, 회계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세무사 시험 과목에는 회계학이 필수였다. 그래서 일단 회계원리부터 강의를 들어보기로 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인강 들으면서, 새로운 꿈을 꾸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어본 회계학이었는데, 나름 듣다 보니 흥미가 생겼다. 천천히 공부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희망 회로를 돌리며 직장인 세무사 준비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직장인 세무사 합격 수기'



아예 불가능한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나 사람은 희망적인 것만 보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없이 그냥 퇴사하기에는 너무 불확실하니, 1차를 일단 붙는다면, 퇴사하고 2차를 유예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처음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시기가 8월이었다. 그런데, 일단 1차 시험은 다음 해의 4월. 실제로 남은 기간은 8개월이지만, 사실상 직장인으로서 평일 하루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4시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말 이틀 합쳐 12시간이면 많은 정도라, 체감은 4개월 정도로 느껴졌다.



전략적으로 일단 1차 과목 중에 나름 고득점이 가능한 재정학과 선택법인 행정소송법에서 고득점을 맞고, 회계와 세법은 과락만 면한다는 목표로 공부했다. 1차 시험 대비로, 기본강의만 수강하고, 중급회계는 거의 절반정도만 본 것 같다. 그러니 객관식 문제대비 강의는 볼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날림으로 공부하니, 결과는 당연히 과락. 심지어, 고득점을 받는다는 과목도 생각보다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과락이 아니었다고 해도, 평균점수 미달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4월 시험이 끝나고 난 후, 다시 그다음 해의 1차 시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다시 못 봤던 부분을 보자고 다짐했건만, 바쁜 회사일에 밀려, 저녁에 퇴근 후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나의 운빨을 믿으며, 찍신이 강림하기를! 하고 열심히 기출문제 풀고, 처음 시험 볼 때보다는 조금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2차 시험에서도 과락을 면치 못했다. 이번에는 될 줄 알았는데, 이 지겨운 이중생활을 또 1년이나 해야 한다니.




'남들은 그렇게 들어가고 싶은 직장인데, 왜 거기를 나오려고 하냐'

'회사는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버티는 거야'



이런 말을 들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1차 합격이라는 결과를 보이고 퇴사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 나를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남자친구가 말했다.



"너는 한다면 하는 애잖아, 어차피 합격할 건데 왜 그렇게 고민이 많니?"



나를 나보다 이렇게 더 믿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그는 그때 취업한 지 1년이 된 시점이었고, 이제 본인도 취직했으니, 내가 백수가 된다고 해도, 자기가 벌면 된다고 했다. 그가 길어지는 취업준비기간에 불안해할 때, 내가 정년까지 다니면 된다고 큰소리쳤던 시절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의 말에 용기를 얻고,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뭔가 집중해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 일도 하려니 답답하기는 했으니까. 그래서 딱 수험기간을 정해놓고 도전해 보고, 그때에도 안 되면 안 되는 걸로 생각하고, 다시 재취업하기로 했다. 이도 저도 정 안 되면 결혼이나 하자고 그랬지만, 우리가 결혼한 건 그보다도 4년이나 지나서였다.









그리고 이제 부모님께 선언할 일만 남았었다. 언제나 내가 먼저 결정 내리고 통보하는 식이기는 했지만.



"내가 회사 다니면서 조금씩 준비해 봤는데, 쉽지 않더라고. 집중해서 한 번 준비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려고."


"어렵게 들어간 은행이 아쉽긴 하지만, 뭐 정 원하는 게 있다며 해야지"


예상외로 부모님은 쿨한 반응이었다.


"내가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냐. 더 놀아라~"


눈치 보며, 다시 백수 선언을 한 큰 딸에게 아빠는 쿨하게 농담으로 받아쳤다. 나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아빠 눈에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였겠지. 한 번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계획한 것에 대해 세세히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응원해 주셨다. 나라면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전적으로 자녀의 말에 동의하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아무튼, 가족의 이런 무한한 지지를 받으며, 나는 퇴사 후 온전히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2년 안에 유예합격이 목표였지만, 운이 좋게도 퇴사한 바로 다음 해 동차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합격하고 나니, 그간의 1차 합격만을 바라보며 한 공부가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내 힘으로만 잘 버티며 서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옆에 잔뿌리 하나하나가 나를 세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믿음을 자양분으로 하루하루 자라고 있었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내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를 아껴주고 믿어주는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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