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만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일상툰이라기에도 애매하다. 일상을 자세히 서술하지도 않고, 주변인들과의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거의 없다. 그냥 뜬구름 같은 생각들을 뭉쳐 만드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호흡도 짧아서 이야기가 시작되다 만 느낌으로 끝난다. 이런 만화가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가 하면 사실 그렇지가 않다. 어디 포트폴리오에 넣기도 그렇고, 이 만화를 보고 외주를 주는 곳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어떤 기획을 해서 나온 만화가 아니고, 목적이라고는 '매일 한컷이라도 그리자.'였기 때문에 쓸모있기가 힘들다. 나를 닮아 조금 애매하고 자폐적인 성격이 있는 이 만화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화고, 가장 재미있게 그릴 수 있는 만화의 형태라는 것.
생각해 보면 애매한 것은 만화만이 아니다. 요즘의 내 삶의 형태. 나의 직업. 뭐 하나 애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정체성이 확립이 잘 안된다. 나는 대체 뭔가. 나는 앞으로 뭘 할 수 있는가. 이 나이 먹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 중에 뭔가 더 쓸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머리 굴리고 글도 써보고 하고는 있지만 글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
애매한 만화를 그리면서 직업도 있는 둥 마는 둥 살고 있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또 확실하다. 지금 내가 그리는 만화가, 지금 내 삶의 형태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들 중에 가장 나에게 맞는 것이다. 애매한 재능으로 애매하게 살고 있는 지금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그나마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