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다이어리 190128 - 아무것도

by 백홍시
190128.jpg

마음속에 심판관이 있는 모양이다. 하루 종일 머릿속이 복잡해도 이런 생각은 '생각'으로 치지 않는다고, 이것저것 하긴 해도 이런 것은 '일'이라 인정 못한다고, 계속해서 나를 심판한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데요. 억울함을 호소해봐도 소용이 없다. 억울해하면서도 내심 조금 동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워낙에 오랫동안 심판받아온 탓에, 나도 어느샌가 그의 논리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무가치함을 느끼는 원인 중 하나로 일종의 자기 과대평가를 꼽았는데, 무가치한 감정의 기저에 이런 생각이 깔려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것보다 더 잘난 사람인데.
이런 보잘것없는 일은 내 일이 아니야.
나는 이것보다 더 크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그 '훌륭한 나' 때문에 정작 '현실의 나'는 무가치하고 보잘것 없어진다. 정작 그 '훌륭한 나'는 지금까지 현실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이건 자신감도 패기도 아니다. 근거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멍청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작은 일들을 하는 내가 지금의 나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인정하지 않으면 이런 불만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지금은 초라하지만 이것보다는 나은 사람일 거라고 위안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이어나가다 보면 나는 정말 세상을 피라미드로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 초라하다는 생각도,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모두 세상을 보는 나의 이런 시선에서 비롯된다. 결국 나는 심판관의 논리대로 살고 있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소박한 가치와 평등을 추구하는 척하면서, 사실 세상의 기준대로 줄 세우기를 아주 열심히 하는 나다.

매거진의 이전글디어다이어리 190127 - 자주 쓰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