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자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생각을 해 봤는데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단다. 첫 출근을 한 지 5일 만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니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후였다. 혼자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짐도 없었지만-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다시 백수생활로 들어서는 문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고작 며칠 만에 ‘얜 안 되겠다.’ 싶을 정도의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혹시 다른 직원들은 미리 알고 있었을까. 뭐, 알고 있었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겠어. 어차피 며칠 다니지도 않은 회사, 별 일 아니다 생각하고 털어버리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울컥울컥 무언가 올라왔다. 5일 만에 잘리는 것도 잘린 것은 잘린 것이고, 충격은 충격이었다.
단기간에 회사를 잘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대 중반에 들어갔던 한 회사에서 2주인가 3주 만에 잘린 적이 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건 퇴근 한 시간 전쯤이었는데, 내 사수와 사장님은 외근을 나가고 없을 때였다. 총인원이 사장, 내 사수, 나, 경리 이렇게 4명이었던 그곳에는 경리 직원과 나 둘만 남아 있었다. 나는 내가 잘렸다는 소식을 사장의 입이 아닌 경리 직원에게서 듣게 되었다. 포트폴리오보다 실력이 모자라 안 되겠다는 사장의 마지막 전달사항을 직원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다. 같이 점심을 먹고 일을 하면서도 내가 오늘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나 빼고는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장이 본인 입으로 말하기는 싫으니 직원을 시킨 것이었겠지. 나는 그 사실이 더 비참했다. 아무리 수습 직원이어도 작별 인사는 하고 보내주면 안 되는 거였나. 그렇게 나는 직원 한 명에게만 인사를 남기고 나왔다.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나오는데 눈물이 흘렀다.
그때의 기억이 적잖이 충격으로 남아서,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다짐하며 나는 열심히 했다. 나에게 과분한 일자리를 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첫 출근을 하고부터 매일매일 밤늦도록 직무 관련 공부를 하다가 잤다. 일 못 해서 잘리는 일이 없도록. 사회성이야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과 마구 친하게는 못 지냈지만, 어쨌거나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뭐. 결국 또 이렇게 되었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완전히 못생긴 얼굴을 하고는 울었다. 눈물을 참아 보려 해도 계속 흘렀다. 무슨 눈물일까. 억울함? 서러움? 창피스러움? 이유야 뭐든 참아보려 이를 꽉 깨물어도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고, 사람들은 한껏 표정을 찡그린 나를 힐끔거렸다. 이깟 일이 뭐라고, 며칠 만에 회사 잘린 것이 뭐가 그리 대수라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눈물이 나는지, 멘탈이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세상을 살 건지.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약점이 있고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일’이다. 일과 관련된 실패는 아주 작은 실패라도 나에게는 크게 다가온다. 그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욱 긴장하고 열심히 했던 것이다.
지하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은 바보 같았다.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없어서 급하게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은 어깨가 너무 넓어서 꼭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얼굴은 언제 또 이렇게 늙어버린 건지. 탄력 없이 흘러내린 볼 살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어떻게든 입고 살아보려고 낑낑대는, 얼굴만 늙어버린 어린 나. 나는 창에 비친 어린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어린 내가 나더러 창피하다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울어서 창피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크게 상심해서 창피하고, 또 스스로를 창피해해서 또 창피했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스스로에게 소소한 맥주 한 잔을 건넸다. 진탕 마시고 잠이나 자야지 했는데 위가 줄어서인지 맥주 한 잔에 배가 다 차 버렸다. 이제 술에 취하는 것도 맘대로 안 된다. 침대에 누워 드라마나 잠시 보다가 피곤이 몰려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방 안에는 옷가지며 맥주 캔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커다란 외투 아래에는 그것을 입어 보려는 어린 내가 잠도 들지 않고 밤새도록 낑낑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