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내 마음에 대해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하지만 오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늘 나는 우울했다. 불안하고, 외롭고, 쓸쓸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일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내 삶 탓일까. 실제로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도 있으니 어쩌면 정말 날씨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엇이라도 탓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오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정말로 기나길다.
집에 오는 길에 육포와 맥주 한 캔을 샀다. 집에는 지난번에 사다 놓은 맥주가 한 캔 있었다. 맥주 두 캔을 순식간에 마셔 버리고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라디오에서 내 마음을 읊는 듯한 한 소절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꽃이 피는지 알면서도 나는 시들어갔다.
내 꿈의 끝 그 어딘가에 나는 내가 서 있을 줄 알았다.
YB <생일> 중에서
그 말 대로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쩌면 모두 알고 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내 삶은 생각보다 짧을 수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저 하면 되는 것. 오지도 않은 것들에 지레 겁먹지 말고 그저 하면 되는 것이었다. 불안에 손을 덜덜 떨지 말고, 제대로 펜을 잡고 선을 그었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수련회에서 웅덩이 건너기를 한 적이 있다. 밧줄을 잡고 점프를 해서 웅덩이를 건너 착지하는 것 말이다. 1학년 전체가 줄을 지어 서서 밧줄을 잡고 한명 씩 점프를 했다. 내 차례는 점점 다가오고 내 앞의 아이들은 누구 하나 실패 없이 모두 무사히 웅덩이를 건넜다. 줄을 서 있는데 문득 내 안에 불안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아니 분명 떨어질걸. 나 운동신경도 없잖아.’ 내 머릿속에는 웅덩이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된 내 모습이 그려졌다. 심장이 쿵쿵 뛰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실패하지 않았는데 나만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진흙투성이가 되어 놀림감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제발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내 차례는 왔다. 나는 발을 떼지 못했다. 못 하겠다고 울먹이는 나에게 교관은 얼른 뛰라고 재촉했고 내 뒤에는 같은 반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주저주저하며 발을 떼고 밧줄을 잡았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는 점프가 아니라 그저 밧줄에 매달리기만 했고 결국 진흙에 빠지고 말았다. 내 안의 불안이 나를 비웃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빠질 거랬잖아.’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불안해하지 말고 그냥 점프를 했다면, 어쩌면 나는 무사히 웅덩이를 건널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건 아주 작고 얕은 웅덩이였으니까. 불안은 늘 두려움을 데려 오고 나는 그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다 보면 일들은 늘 실패로 돌아갔고, 불안은 보란 듯이 나를 비웃었다. 그러면 나는 또 그 비웃음에 동조해 스스로를 비웃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문득 내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불안에게 너무 휘둘려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주 작고 얕은 웅덩이조차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불안에게,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늘 동조해 온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것도 모자라 나는 스스로 웅덩이를 파고 들어가 앉았던 걸지도 모른다. 불안이 나를 비웃기 전에 내가 나를 비웃기 위해서.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어쩌면 복잡한 것은 내 마음 뿐인지도 모른다. 그저 오늘 할 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 걸으면 될 것을. 걷다가 웅덩이가 있으면 주저 말고 점프를 하면 될 것을. 웅덩이에 빠지지 않을까, 이러다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말이다. 짧디 짧은 생을 살면서 뭐가 그리 불안하고 생각이 많을까. 뭐가 그리 두려워서 꽃 피우는 법을 알면서도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을까. 조금만 덜 불안해하고, 조금만 덜 걱정한다면 정말로 언젠가는 내 꿈 어딘가에 내가 서 있지 않을까.
그래. 시들지 말자. 내일부터는 조금씩 피어가자고 생각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