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25 - 12월의 첫날

by 백홍시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무언가 발에 챈다. 발끝을 보니 아차,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여름 이불이 침대 위에 아직도 뒹굴고 있다. 여름 이불도 정리하지 못하고 맞는 연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쏜살 같이 흐르고, 이놈의 시간이란 것은 ‘이제 내 나이가 좀 익숙하네.’ 싶으면 금방 연말이 돌아온다. 연말이라고 해서 뭐가 특별한가. 12월 31일이 지난다고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살던 대로 살면 되는 것을.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마지막’이라고 하면 늘 아쉬움이 샘솟는다. 아쉽고 후회되고 애틋하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이 감정들을 통틀어 ‘연말 기분’이라 하는 거겠지. 이 연말 기분에 한 번 사로잡히면 쌀쌀한 날씨와 함께 불어오는 감정들에 정신도 못 차리고 한해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한 해를 돌아보니 올해는 별로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 싶다. 특별하게 이룬 것도 없고. 아니다. 생각해 보니 POD 출판으로 책을 발간한 일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몇 번씩이나 교정교열을 해 가며 힘겹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봐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책 한 권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하기는 하다.


아, 그러고 보니 또 중요한 성취가 있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긴 것이다. 나라와 은행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보니 그래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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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이후로는 한 해 한 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기에, 나는 지금도 내년의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잘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뭔가 재밌는 만화라도 하나 그릴 수 있을지. 아마도 이런저런 작은 만화와 글은 계속 만들고 있겠지만.


이렇게 말하지만 아직 2019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연말 기분에 사로잡히면 꼭 12월을 없는 달 취급하며 마음이 이미 다음 해로 넘어가고 마는데, 그럼 안 된다. 12월은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달이니까.


12월이라고 하면 시끌벅적하고 화려하지만 코끝이 쓸쓸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인맥이 좁은 나에게 12월은 대부분 혼자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었다. 송년회나 모임도 좋지만, 한 해를 정리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12월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하던 대로 하며 살아야겠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저 사는 것만도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무슨 거창한 계획 이전에, 살아남기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 그래, 나는 12월 한 달간 잘 살아남아 2020년으로 넘어가기로 해야겠다. 열심히 잘 살아남으면 좀 더 나은 다음 해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다음 해는 정말 올해보다 나을까. 글쎄, 생각이 많아지는 12월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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