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내가 글과 그림을 창작한다는 사실이 좋다.
만들 때도 부끄럽고 내보일 때도 부끄럽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나에게는 꽤 괜찮은 추억 보따리가 된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
<타임 패러독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에, 오히려 더 컴컴한 어둠 속으로 들어갔던 그때의 감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먹먹해진 마음을 겨우 추스르려는데, 옆에 앉은 남자 친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너무 재밌다 그치?"
나는 전혀 그런 말을 나누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 아, 뭔가 기분이 이상해."
"뭐가?"
그것은 절대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몰라. 그냥... 외롭다고 해야 하나?"
"자기가 외롭다고? 아니면 주인공이?"
글쎄. 둘 다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기도 싫은 감정에 복받쳐 있는 내 옆에서, 그가 변함없이 생글생글 웃는 미소로 말을 걸었던 그 순간에 또 한 번 땅은 갈라졌다.
같은 관계 속에서 몇 번이나 같은 순간을 겪은 나는 그때 이미 갈라진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인생의 고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 누가 있든 말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에.
지금은 그 영화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직후의 감정들은 아주 또렷하다.
나는 관계에 기대하는 것이 아주 많다.
척하면 척해주길 바라고, 눈빛만 봐도 대충 읽히길 바란다.
때문에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고, 관계 속에서도 상대방을 괴롭히고, 스스로 늘 외로워진다.
그래서 나의 창작물은 더없이 소중하다.
혼자 그 영화를 보고, 차라리 글을 썼다면 그런 처참한 기분은 느끼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또 그래서, 나의 창작물은 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혼자 보려고 썼지만 누구나 열어볼 수 있는 책장에 꽂아둔다.
누가 볼까 봐 부끄럽지만 누가 볼까 봐 두근대는 마음과 함께.
혹시 이걸 보고 누군가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호기심 때문에 책장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몰래 숨어 지켜보기도 한다.
어쩌겠는가.
내가 겁쟁이인 것을.
겁쟁이라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글 쓰고, 공감하고, 위로받는 것을.
겁쟁이에게도 외로움을 달랠 권리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서라도 나는 이것을 업으로는 삼을 수 없을 것 같다.(실력은 잠깐 논외로 해주시라.)
일이라고 하면 무엇이든 싫어지는 법이니까.
이것마저 싫어지면, 나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