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45 - 그림 그리는 아이의 역사

by 백홍시

6살 때 국제 어린이 미술 콩쿠르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쉽게 보기 힘든 커다란 트로피가 집에 있었지.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가 내 그림 인생의 정점이었다.

미취학 아동일 땐 '나름 그림 신동'이었다면, 초등학교 때는 '우리 학교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애'였고, 중학교를 올라가면서부터 '우리 반에서 그나마 그림 잘 그리는 애'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몰랐는데 쟤 그림 그리나 봐'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관련 전공을 택하면서부터는, 내가 '그림 잘 그리는 애'라는 인식이 내 안에도 없었고, 내 동기들 사이에서도 없었다.
관련 일을 잠시 했을 때에는 언제나 대체 가능한, 그저 그런 '저가형 작가'였고.

그렇게 어느 순간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연필이고 태블릿이고 몽땅 손을 놨다.
차마 버리진 못 했지만 어디다 뒀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애니메이터로 근무하면서 하루 종일 연필을 잡긴 했지만, 그건 그림이라 불릴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했던 일은 사실상 단순노동에 가까웠다.)
낙서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오륙 년 사는데 어느 날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어 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힘들어서. 힘든데 위로받을 곳이 없어서.
먼지가 잔뜩 쌓인 태블릿을 겨우 찾아 그림을 그리려니 손이 덜덜 떨렸다.
겨우 작은 것 하나 완성하고 나니 눈물이 다 났다.
그 감정은 명확하게 반가움이었다.
언제나 위로를 주던 내 어린 시절 친구는, 갑자기 버려지고 잊혀져 가면서도 묵묵히 기다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다시 위안과 평온을 줄 날을.
나는 얼싸안고 회포라도 풀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전에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성악 전공자였던 한 여자 연예인이 지금은 노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즐겨'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혀'.
떠밀려 겨우 부른 그녀의 노랫소리는 마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그때 그분이 했던 말인지 방송을 본 시청자의 글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데, 어느 한 문장에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어요."

그림 그리는 게 싫어졌다고? 꼴도 보기 싫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태어나서 처음 연필을 잡던 순간부터 나는 '그림 그리는 아이'였는데.
그건 내 자아고,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일에게서 멀어져 버린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싫다고 말하면 모른 척 살 수 있을까 봐.

그렇게 다시 그림을 그린 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손이 다 굳어버려 중학생 수준이던 그림도 점점 늘어, 그동안 소소하게 장비값 정도는 벌어다 주었다.
어린 시절에는 칭찬받기 위해 마구 그려댔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그림이 늘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에 여덟은 마음에 안 든다.)


영원을 약속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영원하자고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약속은 아니고 다짐이다.
죽을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창작을 하겠다는 다짐.
내 걸음들을 사라지게 두지 않고, 그 발자국들을 창작물에 박제해 놓겠다는 다짐.
그러고 나서야,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다짐.
모든 고민과 생각들은 내 글과 그림에 가둬놓고, 정작 나는 아주 가뿐한 마음으로.

나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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