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46 - 꽃을 심자

by 백홍시

20대 초반인가, 너무 좋아했던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처음 봤던 순간에 받았던 느낌이 생생하다.
가슴 언저리에서 꽃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몇 년인가 지나고 다시 그 영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 또한 생생하다.
내 가슴은 콘크리트 벽.
꽃은커녕 싹이 돋을 틈 조차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어딘가 억울한 기분으로 다시 영화를 봤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어 꺼버리고 말았다.
나는 대체 어느 시점에, 왜 변하는 걸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어느 날, 나는 그 변화의 시작점이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어린 시절 잠으로 빠져드는 순간이 궁금해서 내려가는 눈꺼풀을 붙잡고 억지로 깨어있다가, 결국 기절하듯 잠들어버린 것처럼.
그냥 깨어보니 아침이더라.
그뿐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얼마나 변해버린 건지 깨닫고 어쩐지 지난날들의 스스로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꽃을 선물하던 그 영화는 이제 없다는 사실이 슬퍼졌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그렇다.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빠르게 캐치해 유연하게 발맞추어야 한다.
콘크리트 가슴에도 꽃씨를 심어줄 무언가를, 물을 줄 누군가를, 나는 계속 찾아 헤맬 것이다.
한번 꽃이 피었다고 영원히 향기롭겠지, 하고 있다 보면 어느 날 무색무취의 삶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

매거진의 이전글잡문 45 - 그림 그리는 아이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