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잡문 51 - 나와 손잡고

by 백홍시

혼자 재밌게 놀다가, 갑자기 이런 내가 웃겨서 연신 피식거렸다.
주변에서 종종 듣는 말.
넌 혼자서도 참 재밌게 논단다.

나는 혼자서 갑자기 재미난 일들을 벌이기도 하고, 혼자서 멋들어지게 차려놓고 파티 아닌 파티를 열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서 혼자 피크닉을 가기도 한다.
자기애가 넘치는 타입? 그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싫을 때가 너무 많다.
다만 어느 날 나는, 나와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을 뿐이다.

책 <열한 계단>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나라는 구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잠시 생각 후, 없을걸-이라고 답했다.
육체를 떠나는 것이 '나'의 끝이라면, 그것은 말 그대로 '나'로서만 살다가 가는 것이다.
'나'의 육체를 떠난 후에 혼이 된다면, 만약 그 후에도 자아가 있다면, 그 또한 감각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나'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나를 싫어해도 나는 나를 벗어날 수 없다.
한동안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답답해 가슴을 쥐었다.
내가 얼마나 싫으면,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답답한 시기가 지나고는 조금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헤어질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버스 안에서 어느 어르신이 이 버스가 ㅇㅇ학교로 가냐고 물어 오셨다.
목적지는 내가 모르는 곳이었고, 들어보니 버스의 행선지와도 달랐다.
이 버스는 그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말씀드려도 어르신은 발만 동동 구르며 어디로 가야하는거냐 혼잣말을 하실 뿐이었다.
아, 나도 곧 내려야 하는데. 무시하고 내릴까 하다가 지도 어플을 켰다.
다행히 내가 내리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갈아타면 되는 것 같아서, 같이 내려서 길을 안내해 드렸다.

이렇게 종종 선행을 베푸는 이유, 다른 것 없다.
무시하고 지나갔다가는 나중에 스스로에게 비난을 퍼부을게 분명하니까.
그래.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잘 봐달라고 굽신거리는 중이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니,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살랑거리는 중이다.
착하게 살 테니, 예쁜 것을 줄 테니, 맛난 것을 먹여 줄 테니, 재미있게 해 줄 테니, 그러니 제발, 제발 나를 미워하지 말라고.

나는 살아있는 자체로 가치 있다는 말 따위가 먹히지 않는 인간이다.
삶 자체가 감사함이라는 말, 와 닿지 않는다.
계속 증명하고 또 증명해야 한다.
내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임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헤어질 수 없는 내면의 비판자야.
나 이렇게 잘하고 있잖아.
노력이 가상하지 않니?
좀 예뻐해 줘.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나를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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