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예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짤방인데, 그것을 보고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찾기가 힘들어 말로 설명하자면,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패러디한 몇 컷 짜리 만화였다.(원래는 시리즈였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가장 유명했다.)
개미가 묻는다. "베짱이야. 그렇게 놀다가 겨울이 오면 어쩌려고 그래?"
베짱이가 생각하더니 웃으며 대답한다. "죽지 뭐."
이게 끝이다.
이 장면이 왜 유행을 했을까?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대다수의 현대인은 개미와 베짱이에서 개미 역을 맡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베짱이처럼 사는 사람을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쟨 미래 걱정도 안 되나?'라는 비난 어린 궁금증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그래서 웃으면서 말하는 "죽지 뭐."라는 한 마디는 어떤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한 개미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개미 1인으로서는 함께 웃었을 것 같다.
"그래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 세상에 뭐가 그리 걱정이라고 걱정을 짊어지고 사냐."
사실 개미처럼 사는 대다수도 개미처럼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다지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일, 돈 아니면 절대 안 할 일들을 하며 인생을 때우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 또한 그렇다. 나는 개미 아닌 개미지만 개미로 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베짱이처럼 살만한 배짱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단은 개미 탈을 쓴 베짱이처럼 살고 있다.
어떤 거냐면 이런 거다.
나는 하루 종일 개미처럼 일하지만 개미에서 벗어난 후에는 완전한 베짱이가 되려 한다.
복잡한 개미집을 지어야 하지만 모든 일을 쉽게 생각하려 한다.
세상에 '큰 일'이란 없다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죽지 뭐.'
'관두지 뭐.'
그냥 이렇게 무책임하게 생각한다.
물론 행동은 무책임하게 하지 않지만, 책임감이 마음을 괴롭힌다면 그때부터는 이기심을 조금 발동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첫째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로 경제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셋째로 관계보다 개인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나만 책임진다.'
이것은 나의 삶의 원칙 4번째 항목에도 이미 써 놓았다. (잡문 58 참고)
자연스럽게 나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공고히 하게 된 것이다.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나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는 이타적이되, 개인적으로는 이기적으로.
사회적 책임은 다 하되, 개인적 관계에서 지나친 책임들을 만들어 서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생각한 결과 지금은 예전보다 마음이 편안하다.
삶은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지만 어딘가 안정감이 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삶의 중심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의 차이인 것 같다.
요즘에는 어느 한 곳에 매몰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꿔 말하면 10대, 20대 때는 어느 한 곳에 자주 매몰되었다는 말이다.
공부를 하면 공부가 내 인생의 전부, 만화를 그리면 만화가 내 인생의 전부.
둘 다 하는 것은 안 되고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 무리에 속해서 매일을 보낼 때는 그것이 나의 전부였고, 연애를 할 때에는 상대가 나의 전부였다.
직업을 하나 택하면 평생 해야 할 것 같았고, 회사를 다닐 때는 내 정체성은 그 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경제논리에도 잠식되어 버려서, 돈을 많이 못 버는 나는 한심하고 돈을 많이 쓰면 죄책감에 매몰되었다.
아무튼 무엇을 하나 하면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럼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면, 인생은 그냥 어찌 해도 내 인생이고 나는 어찌 해도 나라는 생각이다.
뭘 어떻게 해도 인생이 망가지기란 쉽지 않고 나 또한 망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내 하루의 반씩이나 바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에 매몰되지 않는다.
내가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쓴다고 해서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 인생을 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은 그저 벽지나 바닥이나 가구에 불과하다.
내가 갖는 직업,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다니는 직장, 취미생활 등등.
그것들이 아무리 인생에서 중요하고 생활밀착적이고 가깝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에게 나의 인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그들을 편입시킨다는 개념.
내 인생의 본질이라 할만한 것들은 늘 그대로 있다.
나의 직장이 바뀌고 직업이 바뀌고 버는 돈이 바뀌고 만나는 사람이 바뀌고, 취미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철학이 바뀌어도.
내 인생은 그냥 하얀 방이다.
나는 내 방을 예쁘게 꾸미는 데 집중할 뿐이다.
가구나 소품들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바뀌면.
방 분위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벽지나 바닥조차도 바꿀 수 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메꿔갈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악한다고 해도 내일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노력해서 깨달아야만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어차피 방 한 칸이 전부다.
내 삶의 중심은 그 방에 있다.
한정된 방 한 칸에다 돈을 쏟아부어 금붙이로 꾸미든지, 꽃을 잔뜩 심든지, 어쨌거나 반납하고 떠나야 할 방 한 칸이다.
결국 나는 그냥 하얀 방이고, 백지다.
벽지에 누가 낙서를 하고 갔다면 그냥 뜯어 버리자.
못 뜯겠어도 상관없다.
낙서된 벽지가 방안에 있다고 해서 뭐가 큰 문제인가.
이 방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뒤돌아보면 사라지는 방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참 쉽게도 산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맞는 말이다. 현실은 훨씬 복잡한 문제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접했을 때에는 사실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어떻게라도 풀든지, 어려우니까 대충 별표 쳐놓고 넘어가든지.
그리고 나는 전자를 택했다.
어쩌면 이것은 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고 해도 그것 또한 큰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채점하나? 내가 채점하지. 대충 맞다고 치면 된다.
나는 인생 쉽게 살고 싶거든.
누구나 그렇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