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78 - 돌고 돌아 다시 봄

by 백홍시

즐겨먹던 라면이 어느 날 너무 느끼해서 한 그릇을 채 먹지도 못하고 일어서야 했던 일.

환절기마다 교복처럼 입던 외투를 다시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모습이 미간을 찌푸릴 만큼 이상해 보였던 어느 해 봄.

처음 먹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맛있었던 국밥을 심드렁하게 씹으며,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저 그런 국밥이라는 생각을 하는 오늘의 나.


그런 일들은 누구의 탓일까.

누구의 탓도 아니지.

그저 계절과 공기와 변해버린 나의 입맛과 취향, 어쩌면 나의 사소한 기분 따위.

그 따위 것들에 의해 좌우되는 알량한 호불호를 어찌 믿으랴.


그러니 지금 그 사랑이 첫사랑만큼 알싸하지 않은 것, 그건 그것이 첫사랑보다 모자라서가 아닐지 모른다.

지금의 사랑이 그것의 시작보다 심드렁한 것, 그것은 누구의 죄도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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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것을 탓하는 것은 바보스러운 일.


가을더러 지는 계절이라, 겨울더러 끝이라 말하지 말라.

늘 봄은 아니더라도 계절은 늘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 깨닫는다면.


어느 날 나는 다시금 라면 한 그릇을 뚝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계절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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