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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홍시 Mar 25. 2021

잡문 100 - 진심의 다리 위에서 추락하며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려 버둥댔다.

이유 없는 곳에서 이유를 찾으려 땅을 파다

결국에 찾지 못한 밤의 동굴에서는

어김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사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면서 슬퍼했지만

사실 사랑은 이미 떠난 지 오래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때 내뱉은 사랑한단 말이 거짓은 아닐 터.

그 순간의 진실되고 또 진실된 진심.

한때 진실이었던 언어는

이토록 갑자기 거짓이 된다.


그래, 어쩌면 모든 진심들은 순간에 불과할지 몰라.

진심에서 진심으로 이어진 돌다리를

잘 밟고 건너는 것만이 진실된 삶을 사는 법일 지도.

그러면서도 나는 또다시 물고기들에게 꾀여

거짓의 강물로 뛰어들고 마는 것이었다.

지나간 시간들을 여전히 손에 쥔 채.

더 이상 소중하지도 않은 그것들을

끝끝내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지나간 것들의 무게에 이끌려

손 쓸 새도 없이 가라앉으면서도,

진심을 모르기에 진심으로 살 수 없는 나는

그나마 쥔 것을 놓지 않으려 더 꼭 쥐며

어차피 다 가짜야,

스스로에게 못난 위안을 건넸다.

그러면 잠깐은 웃는 얼굴을 할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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