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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홍시 May 05. 2021

잡문 110 - 3월 23일, 일기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정말 정말 별것도 아닌 일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통곡을 한다.
나도 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채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는 엉망진창이지만 또한 지나치게 멀쩡하다.
AI스피커의 엉뚱한 대답에 배를 잡고 웃었고, 침대에 누워서는 목놓아 울었다.
그런 삶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나도 괜찮은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다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스스로를 구제불능이라며 혐오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값비싼 과일을 샀다.
그런 삶이다.
우울하냐 묻는 말에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고 답했다.
나의 웃음에는 더 이상 기쁨이 없고 나의 눈물에는 더 이상 슬픔이 없다.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은 나는,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결국 부서지지도 못하고 껍데기로 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새벽.
커튼을 뗀 창으로 새어드는 불빛에 외로이 외로움을 달래는 껍데기가 침대에 한참이나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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