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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홍시 May 19. 2021

잡문 113 - 부여된 가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신념 따위가 아니라 정말 그럴만한 능력이 안된다는 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 편집자들의 눈에 띌 만한 창작물들을 나는 만들어낼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무수히 확인했으면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내 글을, 내 그림을 더 좋아해 줄까 생각하다가 결국 내 색깔도 뭣도 없는 아마추어 작가가 되어 버렸다.  
요즘 유행하는 ㅇㅇ스타일로 그려 봐야지-하고 그려도 그 느낌은 나지 않는다.  
나도 즐겁지 않다.  
이런 나는 그저 평생 연습생이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쓰고 싶을 때 쓴다.  
그 '때'라는 것이 매일매일이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걸 업으로 삼는다면 분명 괴로울 거다.
그래도 누군가 내 그림에, 글에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  
내가 만들어낸 것들에 가치가 있다고 타인이(그것도 다수의) 인정해 준다면 누군들 기쁘지 않겠는가.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을 한다.  
창작물은 내 자식과도 같은데 내가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들의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남에게 인기 얻기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치라는 건 또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당최 그것을 알 수가 없어서 서른몇 살 먹은 지금도 바깥에서 가치를 찾으려 용을 쓰는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생성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헛소리로 시작해서 또 다른 헛소리로 마무리하는데, 아무튼 간에 실력이 없어서 슬픈 어느 새벽의 넋두리.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하고 싶은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슬픈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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