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잉크 Sep 30. 2015

북촌의 사라지는 풍경들, 중앙탕

아빠 손잡고 가던 목욕탕의 추억을 떠올리며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 잡아 도시 개발의 손길을 벗어난 북촌이지만 관광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바람은 피할 수 없었다. 철물점, 서점, 미용실 등 주민들을 위한 생활편의시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페, 레스토랑이 생겨나며 마을의 외관이 변하고 있다.



계동길 랜드마크, 중앙탕이 사라졌다


시간이 멈춘 듯 80-90년대 아날로그 향수를 자아내던 계동길도 언제까지 시간을 잡아둘 수는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목욕탕이라 불리며 계동길의 랜드마크였던 중앙탕이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중앙고 운동부의 샤워시설로 사용하던 것을 1968년에 대중목욕탕으로 문을 연지 46년 만에 아쉽게 반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4년 11월 16일 문을 닫았다.





가정 내 샤워 시설이 변변치 않던 시절, 특히 한옥이 밀집해 있던 북촌에서 중앙탕은 그야말로 호황기를 누리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아빠 혹은 엄마 손을 잡고 온가족이 목욕을 하러 가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어르신을 만나면 등도 밀어드리고 입구에서 같은 반 이성친구를 만날 적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던 추억이  함께했다. 


최근에는 북촌 게스트 하우스에 숙박을 하면 관광객에게 목욕 쿠폰을 주기도 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던 중앙탕이었는데 결국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었다. 문을 닫을 당시 목욕비가 5,000원(성인 기준)이었다는데 처음 문을 열었던 60년대 후반 목욕비는 400 환이었다고 한다.






다시 살아난 중앙탕의 환생


그렇게 쓸쓸히 중앙탕은 문을 닫았다. 중앙탕의 폐업은 작은 마을에서 큰 사건이었다. 모두가  안타까워했지만 서촌 사람들이 마지막 오락실을 부활시킨 것처럼 다시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며 내부 공사를 하던 장막이 걷히더니 다시 중앙탕이 환생했다.


국내 한 선글라스 브랜드가 입점했지만 여전히 중앙탕의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고 군데군데 목욕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졌다. 접수대의 창도 목욕탕의 타일도 심지어 목욕물을 데우던 보일러도 그대로 남았다. 특히, 꼭대기 층을 오르는 길목에서 마주친 중앙탕의 옛 모습은 발길을 멈추게 했다. 기존의 중앙탕 외벽을 그대로 살렸기에 건물 밖에서 볼 때는 중앙탕을 리모델링 한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 옥상의 목욕탕 굴뚝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중앙탕 안에 선글라스와 안경이 진열되고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중앙탕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다시 중앙탕은 마을의 명소가 되었다.




이전 17화 북촌과 커피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