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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Jun 14. 2022

여행에서 충만해지는 방법

누구보다 여행을 잘 즐기고 싶다면. 

최근 가족 여행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코로나 19가 사그라들고 있는 분위기라 그런지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았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 짓는 사람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연신 깔깔 웃는 연인들, 재잘대는 아이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었다는 걸 금세 깨닫는다.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들을 피해 찍어야 하고, 좋은 풍경이 보이는 자리에는 오래 머물 수 없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부대끼는 사람들까지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평화롭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한산한 아침을 상상한다.      



여행 갈 때 세심하게 챙기는 것 중 하나가 숙소의 위치다. 숙소 근처에 뛸 만한 곳이 있는지가 나에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딸은 저녁형 인간이다. 그들이 자는 아침에 나 혼자 조용히 밖에 나와 뛰며 그날 하루 지낼 힘을 충전한다. 아침 러닝, 아니 산책이어도 상관없다. 관광지에서 아침 산책을 하면, 유명한 곳을 나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 항상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곳에 나 혼자 있는 그 느낌을 아는지. 갑자기 얼마나 부자가 된 것 같은지, 얼마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지. 난 섭지코지에 있는 많은 관광객을 보며 생각했다. 

‘내일 아침 이곳에 뛰러 와야지.’      


아침 산책하며 찍은 츠빙거 궁전

아침 러닝(산책)의 묘미를 알게 된 건 5년 전, 독일 드레스덴에 갔을 때다. 드레스덴 구시가지에 숙소를 얻었다. 평소같이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혼자 이곳저곳을 뛰다 우연히 츠빙거 궁전에 들어갔다(티켓을 끊지 않고 그냥 들어갈 수 있다).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던 곳에 아무도 없다. 난 정원을 돌며 ‘안녕!’하고 인사했다. 예전에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대단하신 분들이 살던 곳일 텐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와있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도 언젠간 없어지겠지. 대단한 사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공평하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잘 살고 싶어 진다.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 뒤로는 거의 항상 여행을 오면 아침에 러닝을 한다.



     

제주여행 이튿날, 아침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가 섭지코지 근처라 조금 뛰다 보니 금세 올라가는 언덕길이 나왔다. 주변엔 풀을 뜯고 있는 말들뿐이다. 말 옆에 다가가 이야기를 걸기도 하고 풍경 좋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푸른 바다와 초록 언덕이 다 내 것 같아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내 온몸이 멋진 풍경으로 꽉 채워져 충만해졌다. 갑자기 얼마 전 드라마에서 나왔던 ‘추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 순간 자연이 날 추앙해주는 것 같다. 바다에 비친 반짝이는 햇빛이, 산들바람에 날리는 초록 나뭇잎들이, 드넓은 언덕에 핀 알록달록 꽃들이 날 향해 충만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아침 러닝 중 찍은 섭지코지 풍경.

  

기쁠 때 자연을 보면 함께 자연이 함께 기뻐해 주는 것 같다. 새소리도 노랫소리로 들리고 나뭇잎도 춤을 춘다. 힘들거나 슬플 때는 자연이 함께 슬퍼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새소리도 나 대신 울어주는 울음소리 같고 나뭇잎과 꽃잎이 바람에 거세게 움직이며 나와 함께 화를 낸다.     

“자연은(해와 바람과 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 줄 것이다. 태양은 그 밝음을 감출 것이며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할 것이며 구름은 눈물의 비를 흘릴 것이며 숲은 한여름에도 잎을 떨어트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 <월든> 5. 고독 中-

      

난 날 응원해 주는 바다와 풀밭에 크게 손을 흔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가득 충전된 상태로. 아침 식사를 하며 남편과 아이에게 이 경험을 나누었다. 남편은 솔깃해하고 아이는 별 관심이 없다. 그다음 날엔 남편도 함께 아침 러닝을 했다. 관광지 아침 러닝의 좋은 점 또 하나는 바로 포토 스폿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거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열 장도 스무 장도 맘대로 찍는다.   

   

이번 여행에서 아침 러닝이 가장 빛을 발했던 장소는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만 머물다 가는 우도였다. 오후 2, 3시에도 식당에 웨이팅을 해야 하고 도로엔 전기차와 전기 자전거가 많아 운전하는 것도 아슬아슬 조심스럽다. 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또 아침을 상상한다. 오후 마지막 배가 떠나고 나니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은 어디로 가고 자연의 소리가 우도를 채운다. 삐리리 삐리리, 쏴아 쏴아, 컹컹 컹컹. 찌르르 찌르르.      

다음 날 아침엔 우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전기 자전거를 탔다.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검멀레 해변 앞에 아무도 없다. 또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다 기분이 좋아 소리를 지르다 “아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새소리와 바닷소리와 아하하 웃음소리가 세상을 꽉 채웠다.      

아침 라이딩하며 찍은 우도 풍경


여행을 가서 자연이 주는 충만한 지지를 받고 싶다면, 아침 러닝(산책)을 해 보는 걸 추천한다. 팍팍한 삶에서 잠시 떠나 자연을 주는 지지를 누리고 가득 채워지는 경험을 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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