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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Sep 11. 2023

가능성이 있다고?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5

딸은 롯데 자이언츠의 윤동희 선수를 좋아한다. 이제 프로야구 선수가 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타격감이 좋아 거의 매 경기 선발로 출전한다. 하얗고 깔끔한 피부를 가졌고 배구 선수 김희진을 닮았다. 난 야구 중계를 보다 윤동희 선수가 나오면 “얘, 니 남편 나왔다. 얼른 와서 봐.”라고 딸을 부르곤 한다. 윤동희 선수는 만루에서 삼진을 당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땐 “야, 니 남편 대체 왜 그러니?”하고 장난을 친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그러고 놀아서인지 옛 버릇이 나왔다. 나 혼자 짝사랑하는 오빠가 운동장에 축구하러 나오면 친구들은 “야, 네 남편 나왔어!”하고 날 창가로 불렀다. 그 오빠는 나의 존재도 모르는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습관이 먼저 나오고 기억이 뒤따라온다. 습관이란 무섭구나. 

사직 야구장에서 뽑은 전준우 포토카드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전준우. 집중하는 눈빛과 남자다운 외모가 좋다. 딱 야구선수처럼 생겼다. 그러나 난 이미 남편이 있으니 딸은 장난으로라도 전준우가 나왔을 때 “엄마 남편 나왔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전준우는 내 동생이 됐다. 딸은 전준우가 타석에 나오면 “엄마, 엄마 동생 나왔어!”라고 날 크게 부른다. 어느 날 일찍 들어온 남편이 그걸 듣고 “응? 누가 누구 동생?”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이 최근 또 주목하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배영빈 선수다. 우리가 직관 갔던 8월 20일, 처음 선발로 나왔다. 선발 리스트를 발표하는데 팬들이 웅성거렸다. “배영빈이 누구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왜 모르는 선수가 나오는 건가. 불안했다. 그런데, 배영빈 선수는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 

“와!”

순간 팬들의 큰 함성이 고척 구장을 꽉 채웠다. 

“야야, 배영빈 검색해 보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배영빈을 검색한다. 나도 해봤지만 정보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다음 타석에 들어선 배영빈의 타율은 1.0 딸은 배영빈의 타율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그날 배영빈은 총 세 번의 안타를 쳤다. 지금은 ‘배영빈’을 검색하면 배영빈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 2군에 있는데 열심히 연습해서 다시 1군에 올라오기를!)     



얼마 전 딸이 날 보고 말했다. 

“엄마, 배영빈 있잖아. 배우 최우식 닮았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딸은 직접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와 배영빈 사진을 여러 장 보여준다. 인스타에 올라간 사진, 기사에 나온 사진,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사진 등등. 무슨 사진을 이렇게도 많이 검색해 본 건지. 그런데 정말 최우식 닮았다. 내가 정말 닮았다고 호응하니 어깨를 으쓱한다.

“너 이제 배영빈으로 갈아 탄 거야?”

“아니.”

“왜? 배영빈이 윤동희보다 잘 생겼는데?”

“윤동희는 지금 만 19세인데, 배영빈은 나이가 많아. 대학교 졸업하고 와서 만 23세인가 그렇거든.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나이 차이?”

“응. 그... 가능성이 좀 없다고 할까?”

“가능성?”

타석에 올라와서 타격하기 전 윤동희 모습 (다리를 뻗고 배트로 거리를 가늠해 본 후 위치를 잡는 게 윤동희의 루틴이다), 창원 NC파크에서.



아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가능성, 가능성이라니. 대체 무슨 가능성 말인가. 하지만 뭐 나도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랬던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나이에서 내 나이를 빼보고 이 정도면 사귀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모든 상상이 가능했던 그 시절. 그 시절이 딸에게 도래했다.      



얼마 전, 삼성과의 경기(9월 6일)에서 롯데가 이겼을 때 윤동희가 수훈 선수로 인터뷰를 했다.

“오, 네 남편 인터뷰한다!”

내 말에 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윤동희 보고 남편이라고 하는 사람 엄청 많겠지?”

“그럼, 윤동희 부인이 몇백 명은 될걸.”

큭큭. 웃음이 났다. 윤동희는 자신의 부인이 몇백 명이나 된다는 걸 알까. 전준우는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누나가 있다는 걸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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