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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Oct 04. 2023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먼저
알아야 한다

<사춘기 딸과 함께 야구장을 6>

 2019년~2020년 겨울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보면 야구 선수들이 연봉 계약을 하는 과정이 나온다. <스토브리그>는 드림즈라는 야구팀 이야기인데, 이 팀은 4년 연속 꼴찌를 하는 약체팀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 선수 총 연봉 규모는 전해 대비 30%나 삭감되고 그 예산으로 선수들과 연봉 계약을 해야 하는 단장(남궁민 분)과 운영팀장(박은빈 분)은 머리가 아프다.      



운영팀장은 1차로 선수들을 방출했지만 또 방출할 수 있는 선수가 남았는지 꼽아본다. 그러나 방출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적은 금액으로 연봉 협상을 진행한다. 단, 연봉의 책정 방식을 바꿨는데 바로 전 시즌의 성과만 가지고 올해 연봉을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선수는 16년 차 투수 장진우 선수. 한때는 잘 던졌지만, 어깨 수술 이후 구속이 폭락해 홈런이나 장타를 맞는 비율이 높다. 단장은 1억 3천 연봉을 받던 장진우 선수에게 5천만 원을 제안하려고 한다. 



회의 석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대폭 줄어든 장진우 선수의 연봉에 깜짝 놀랐을 때 단장은 의외로 장진우 선수가 이 팀에 필요한 선수라고 말한다.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잡은 병살도 많고 승계주자실점률(앞 투수가 남긴 주자를 교체된 투수가 홈으로 들여보낼 때 수치가 올라가는 지표)도 중간 계투 중에서는 제일 낫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운영팀 팀원(조병규 분)이 놀라 물었다.

“그럼 5천을 부르시면 안 되는 거 아녜요?”

“자기도 모르는 자기 가치를 우리가 왜 인정해 줍니까?”

단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자기도 모르는 자기 가치를 우리가 왜 인정해 주느냐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남이 나를 평가하기 전에 자신의 가치는 자기가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겸손이 미덕이라 그런지 칭찬을 받아도 “아휴, 별말씀을요,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내 단점을 말하라고 하면 줄줄 읊을 수 있지만 장점을 말하려고 하면 오래오래 생각해야 한다. 


     

난 프리랜서로 일하기에 건마다 따로 계약한다. 계약하며 난감할 때가 적은 금액을 제시할 때보다 오히려 받고 싶은 금액을 말하라고 할 때다.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내 성과에 얼마를 달라고 해야 할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까닭이다. 고민은 하지만 거의 항상 내가 회사에서 받았던 비용과 비슷한 금액을 제시하곤 했다. 동일 업계의 프리랜서들끼리 만나면 원고료가 10년간 동결이네, 아동 그림책 편집 비용은 오르기는커녕 떨어지네 하며 불평하는데 정작 나에게 ‘그럼 얼마를 원해?’라는 선택지가 주어질 때는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나는 나의 가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의 가치를 모르니 나의 가치를 더 높이지도 못한다. 내가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모든 일에 나의 시간을 공평히 분배한다. 



글을 쓰는데 지나가는 딸이 보여 물었다. 

“너의 장점은 뭐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아이의 대답. 

“노래 잘하고 기타 잘 치는 거지.”

앗. 그렇구나.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군. 아니 기준이 낮은 건가. 어쨌든 한 번에 대답이 나왔다는 건 긍정적이다. 내가 아무 말하지 않으니 아이는 내게 다시 질문한다.

“아, 이런 거 아니고 성격의 장점 말하라는 건가?”

“성격의 장점은 뭔데?”

“불편한 건 그때그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음, 순화해서 말하려고도 노력하고.”

자신의 성격적인 장점까지 알고 있다니. 딸아, 넌 나보다 훨씬 낫구나.



올해 첫 월요일 야구 경기(09.04)에서 롯데가 두산에게 우승했다. 야구 경기에서 이기면 이긴 팀의 수훈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거의 매번 나오는 인터뷰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이렇게 좋은 플레이를 하느냐는 거다. 경기 후, 내가 좋아하는 전준우 선수가 인터뷰를 했고 캐스터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사직 야구장에 갔을 때 뽑은 전준우 포토카드 이미지. 

“시즌 초반에는 좀 부침이 있었는데 후반에는 원래 전준우 선수의 실력대로 너무 좋은 활약을 하고 계신대요, 뭘 개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준우 선수는 찡긋 웃더니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똑같이 계속했습니다. 뭐 전반기에는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운동하고 똑같이 하던 대로 했는데 안 왔던 운이 후반기에 오는 것 같습니다.”     



전준우 선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다. 자신의 실력과 장점을 알고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고 단지 운이 없었다는 걸 안다. 나도 그걸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박봉을, 그나마도 제대로 입금되지 않는 편집 비용을, 그 회사를 탓할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내 가치를 올리는 일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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