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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Sep 24. 2024

야구는 반복

내 삶을 지탱하는 반복

야구에 꽂힌 후로 저녁 시간이 사라졌다. 아니, 지금 내가 이럴 때인가. 정신을 차리자. 하고 다짐해도 나의 신경은 온통 야구에 가 있다. 일하면서도 간간이 핸드폰을 켜 응원하는 팀의 점수를 확인한다.   


  

아동 도서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열심히 써보겠다, 하는 마음으로 프리랜서를 한 지 7년째. 공모전에 계속 떨어지고 눈에 보이는 큰 성과가 없으니 ‘과연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원고를 쓰겠다며 회사를 나와서는 회사에서 하던 편집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 집안일을 하고 돈이 되는 편집 일을 우선으로 하다 보면 글 쓸 시간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남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게 마땅하련만, 난 남는 시간에 야구를 본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낀다. 사실 아침의 시작부터 야구와 함께한다. 카카오톡에 ‘프로야구봇’을 깔면 매일 아침 8시 반쯤 내가 응원하는 팀의 기사를 보내온다. ‘롯데의 모닝 브리핑이 도착했습니다.’라는 간지 나는 멘트와 함께. 중간중간 짬이 날 때는 야구 유튜브를 본다. 저녁에는 대망의 정규 리그 방송이 있다. 경기에 이기면 하이라이트와 인터뷰까지 이어서 시청한다. 야구로 하루를 채운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야구를 보는데 야구에 대한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전문적인 야구 지식이 필요한 글이 아니라 야구팬의 애환을 담은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응원하는 팀은 승승장구하는 팀이 아닌 ‘롯데 자이언츠’아닌가. 이렇게 삶의 애환과 맞아떨어지는 팀이 어디 있을까.     



24년 시즌 초에 봤던 기사가 생각난다. 헤드라인이 바로 <‘35G 26패, 승률 .235’ 이렇게 져도 져도 꼴찌가 아니라니...한화 밑에는 아직도 롯데가 있다. (이상학, OSEN, 24. 5. 19)> 였다. 정말 헛웃음만 나오는 기사 제목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야구는 계속된다. 이 기사의 제목이 언젠가는 ‘저럴 때가 있었지. 하하하.’하고 롯데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농구는 한 시즌에 54게임을 하고 축구는 38게임을 하는데, 야구는 144게임을 한다. 가을 야구까지 간다면 거기에 몇 경기를 더해야 한다. 거의 6개월 동안 월요일만 빼고 매일 야구를 볼 수 있다. 어제의 야구에 실망했지만, 오늘은 또 오늘의 야구가 있다. 오늘의 야구에 실망했어도 내일은 또 내일의 야구가 있다. 매일 계속되므로, 그 반복됨이 내 삶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야구에 대한 글을 쓰기로 다짐한 후 짧은 글 몇 개를 썼는데, 몇 개 되지 않는 그 글도 자꾸 수정할 일이 생긴다. ‘A 선수의 자세가 달라졌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이다.’라고 썼는데 그 선수가 다음 경기부터 타격 타이밍을 잡지 못하더니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난 그 글을 찾아 ‘자신에 맞는 자세를 찾았어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시즌이 바뀐 후, 이유 없이 부진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쓴 글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선수가 살아난다. 그럼 난 또 그 선수에 대한 글을 찾아 어떻게 고칠지 고민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시즌 초, 거의 한 달 넘게 10위(꼴찌)를 했다. 보기 힘든 경기가 많았다. 백기를 들고 ‘이번 시즌은 그만하겠습니다. 좀 더 열심히 노력해 다음 시즌,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혹가다 한 번 이기면, ‘이제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진만큼 이기겠습니다.’라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 뒤로 또 연패. 그러다 한 번 이기면, ‘좋은 흐름을 탔으니 그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오래지 않아 좋은 흐름은 끊겼다. 


     

그러더니 1위 팀인 기아를 만나 10위 팀인 우리가 스윕승-3연전에서 세 번 다 이긴 것-을 했다. 우리 팀이 기아를 스윕승 한 건 무려 5년 만이다. 경기가 계속되니 상황은 변한다. 나쁘게도 혹은 좋게도. 드디어 살아나는가, 했는데 기아를 스윕승 한 후 한화에게는 스윕패-3연전에서 세 번 다 진 것-를 당했다. 야구는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다. 매일 계속되고 매일 바뀌고. 어느 날은 글이 잘 써지는 것 같다가 어느 날은 이건 글도 뭐도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내 상황과 비슷하다. 야구에 대해 쓴 내 글을 본 누군가가 물었다. 왜 꼭 야구냐고. 그건 바로 반복, 즉 매일 계속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반복으로 채워진다. 출근과 퇴근, 아침과 저녁, 학기와 방학, 기획과 마감, 연초와 연말, 일 년 열두 달과 계절, 명절, 생일도 모두 반복이다. 집안일도 그렇다. 요리하기, 상 차리기, 설거지, 빨래 하기, 청소. 가끔 집안일을 다 한 줄 알고 ‘이제 좀 쉬어야지’하고 소파로 가려다 뒤늦게 빼 먹은 일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한다. 건조기에 돌려놓은 빨래가 있다든지, 싱크대 안에 설거지가 있다든지. 그럴 땐 아휴,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반복도 있고 저절로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도 있고, 원해서 반복하는 운동이나 공부도 있다.


      

그 반복이 내 삶을 지탱한다. 매일 같은 것 같지만 완벽하게 똑같은 반복은 없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청소기를 돌렸다. 어제 늦게 들어와 하루 걸렀더니 곳곳에 머리카락이 있다. 청소기의 스위치를 올린다. 윙. 긴 머리카락들이 청소기 속으로 쏵 빨려 들어간다. 방에 있던 아이가 나오더니, 거실 한쪽에 세워둔 기타를 가져와 기타를 친다. 청소기 소리에 기타 소리가 묻힌다. 아직은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다. 아이가 기타를 잘 치려면 아주 많은 반복이 필요할 것이다. 청소기를 다 돌리자 아이의 기타 연주도 끝이 났다. 앗. 벌써 연습을 끝내면 안 될 것 같은데. ‘벌써 그만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청소기도 기타도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3년째 필라테스를 하지만 뻣뻣한 몸은 쉽게 유연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안 되던 동작이 될 때가 있다. 지루했던 운동이 순간 재미있어진다. 그만해도 되는데 같은 동작을 한 번 더 해본다.  



반복하면서 더 나아지기도 하고, 그 안에서 좌절도 하고 지루해하기도 하고, 실망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그 반복 때문에 나는 야구가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즌에는 거의 매일하는 야구에 대한 글, 아니 야구를 보는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우리 팀이 잘하고 있으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고, 못하고 있으면 또 못하는대로 내 처지 같아 응원하게 된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반복하며 노력하는 선수들을 보며 나도 내 자리에서 잘 버텨야지, 하고 다짐한다. 이 글은 야구를 보며 다짐하는 나의 결단의 글이다. ‘버텨보자!’하고 나에게 소리치는 응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 아직 별 성과가 없는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월요일만 빼고 매일 치러지는 야구를 보며 힘을 얻으시라 권하고 싶다. 삼진을 맞고도 볼넷을 던지고도 그 자리에서 계속 플레이하는 선수들을 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내시기를. 반복되는 경기 중에 성장하는 선수들을 보며 기운을 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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