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불행

by 백은월

사귀게 된 후로도 둘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며 서로를 다독였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힘들 때면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함께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1년간 끊임없이 공부해 왔던 유현과 서한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같은 대학교에 지원해 함께 다니게 된 둘의 사이는 이전보다 더욱 견고해졌다. 고등학생 시절과는 다른 생활에 유현과 서한 모두 항상 즐겁게 살았다. 서로의 마음 깊이 각자의 이름을 새겨 가며. 서한이 군대를 다녀올 때에도 둘의 서로를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깊고 오래된 신뢰와 사랑은 서로를 태풍 속에 세워 두어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견고했다.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는 남자의 취업 준비 기간에도 유현과 서한은 항상 함께였다. 서한이 힘들어할 때에도 유현은 서한의 옆을 지켰다. 각자의 최고 우선순위에 서로를 두었고, 어떤 일이 있어도 1순위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서한이 취업에 성공하고, 유현과 서한 모두 엄연한 직장인이자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도 둘의 사이는 변함없었다. 동창회에서 아직 둘이 만나냐고 물어볼 정도로, 둘의 사이는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물론 돈을 벌지 않았던 학생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삶이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행복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유현아, 사실 나 외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남들이 보면 절대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좋은 기회였지만, 유현과 서한에게는 불행이었다. 아주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그런 최악의 불행. 서한의 말을 듣고 꼼짝 않던 유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에 공기가 가라앉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으니 이제 앞으로는 함께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유현은 말을 제대로 꺼내는 것조차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

“아직. 너랑 그렇게까지 멀리 떨어져서 지내고 싶지 않아서 고민 중이야.”

“어디로 가는데?”

“뉴욕. 뉴욕이 아니더라도 미국 내에서 일하게 될 거래.”

인생에 다신 없을 기회였지만 서한은 오래 망설였다.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이자 원동력인 유현 없이 스스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 사실을 꺼내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었는데, 꺼내고 나서도 후회했다. 유현이 놀란 게 잘 느껴져서. 그런데 유현과 떨어져서 지낸다니. 군대에 가 있었을 때도 힘들었는데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도 매일 보지 못해 힘든데 외국에 나간다면 그 힘듦은 배, 혹은 그 이상이 될 것이 뻔했다.

이는 유현도 마찬가지였다. 서한에게 너무나 좋은 기회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서한과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아가기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유현은 자신이 서한을 기다려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니까, 그런 기다림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 덕에 서한이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 준비를 하던 그 시기조차 아무렇지 않게 서한의 옆을 지켜 왔다. 그래서 지금 시기를 유현은 보상받는 기분으로 누리고 있었다. 힘들어하던 서한을 보던 순간이 끝났다는 것이 유현은 너무나 기쁘고, 또 행복했다. 이제 어딘가로 떠날 일도 없고, 더는 매일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마음 아파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서한이 외국으로 떠날 수도 있다는 소식은 유현에게 좌절감을 선물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잘 생각해 봐. 너무 좋은 기회긴 하잖아.”

“응, 생각해 볼게.”

어린 나이였다면 마냥 사랑을 위해 당연히 가지 않겠다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둘은 사회에 적응한 어엿한 어른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선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둘이기에 서한에게 찾아온 기회는 너무나 가혹했다. 태풍 한가운데에 선 둘의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랑을 막던 거대한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 때문도 아닌, 서로를 향한 사랑 때문에.

유현은 서한이 기회를 날리길 바라지 않았다. 사랑이라면 누구와도 다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회는 아닌 것. 기회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오로지 운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연인인 상태로 해외로 서한을 보내면 둘의 삶이 망가질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이미 서로의 삶에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야 했다. 엄청난 시차와 각자의 일로 인한 피로, 아무리 굳건히 쌓아 온 관계라지만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유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싸움이라 부를 만한 큰 다툼 없이 마주한 문제들을 대화로 해결해 왔던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랬을까, 유현과 서한은 상대가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다른 연인처럼 크게 다투고 상처받았다면 그저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현과 서한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생긴 믿음과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서로를 향한 배려와 사랑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었다. 오죽하면 자신에게 과분한 상대라 여길 정도로. 자존감과 자신감이 모두 사라지고 미칠듯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무력하게 살아갈 때도 꿋꿋이 옆을 지켜 주던 연인은, 무력감에서 헤엄쳐 나오더라도 무능한 자신에게 너무 과분한 상대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잘 알고 있잖아. 서한이는 항상 나에게 과분한 아이였다는 거. 내 마음 하나 때문에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아이의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아. 정리해야 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사람과 함께 할 가치가 차고 넘치는 아이잖아.’



서한은 자신의 가까운 지인에게 유현에 대해 설명할 때면 과분한 사람이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군대와 취업 준비 과정을 모두 기다려 주고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유현은 자신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행운의 집합이었다. 자신이 마주할 수 있는 모든 행운을 모아도 유현의 존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 믿을 정도였다. 로또가 되어도 유현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서한에게 유현의 존재는 도무지 말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아무리 어울리는 말을 떠올려 봐도 유현에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과분한 사람이란 말이 유현을 가장 잘 설명할 뿐이었다. 그래서 서한은 언제든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눈치가 빨랐던 서한은 유현이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기도 전에 유현의 감정을 먼저 알아차렸다. 아주 오랫동안 쌓아 온 감각이자 애정의 일종이었다. 야속하게도 그 감정의 속을 낱낱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화,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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