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하고 쾌청했던 바람이 어느새 매섭고 차가운 바람에 쫓겨 달아났다. 추위의 얼음을 꿀꺽 삼킨 탓인지 몸 안의 장기들이 잔뜩 움츠려 들었다. 좁은 목구멍을 통과한 얼음이 세포 하나하나를 스치듯 건드리며 지나가자 온 몸이 경직되었다.
멈춤의 계절이 온 것이다.
떠들썩하던 놀이터는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뛰놀던 동물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 계절을 지나는 내내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던 나무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느려지고, 점점 비어갔다.
나 또한 점점 굳어가고, 점점 멍해졌다.
걸어야 할지 뛰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순식간에 온 천지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두 다리를 모아 함께 웅크렸다. 어둠이 데려간 건지, 추위가 앗아간 건지 모른 채로 정신없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눈을 떴다. 어스름이 새벽이 오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빛이 광선검처럼 굵어지더니 마침내 나를 가득 비추고도 남을 만큼 땅 위에 퍼졌다.
지평선 끝까지 소복이 쌓인 눈가루들이 반짝이며 빛을 반겼다. 나는 이제 꿈에서 깨어나 다시 걸어가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멈춤에서 깨어날 때이다.
느릿한 발걸음을 번갈아 디디며 작금의 고요함을 천천히 휘저어 놓는다. 금세 지워질 발자국을 새하얀 눈 위에 찍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운다. 빛이 나에게 길을 내어주고, 명징한 그림자가 나를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