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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Dec 08. 2021

나는 눈물이 헤픈 여자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하다

"띵동!" 아이들 학교 알림이 울렸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단다. 확진자 학생과 같은 층을 쓰는 큰 아이가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되었다. 큰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언니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검사를 받지 않게 된 막내 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방의 메들리처럼 끝없이 흘러나오는 막내 아이의 노랫소리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올까 봐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는 큰 아이를 보면서 웃음을 겨우 삼켰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 분위기는 양성이었다. 언니는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고 자신만 등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막내가 찡찡대기 시작한 것이다.(참고로 우리 집 막내는 감정표현에 아주 충실한 아이다.)
나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은 일도 생기기 마련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날도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던졌다. 막내도 늘 그렇듯 똑같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속상함을 마구 분출했다.




엄마라는 명찰을 하나 더 달게 되면서 나에게 넘쳐흘렀던 눈물이 어디론가 모두 증발해 버렸다. 처음에는 엄마니까 강해져야 된다고,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참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눈물이 사라졌다. 예전보다 행복해졌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물 짤 일이 없어진 것이라고.


13년 만에 다시 마주한 나. 그동안 역할에 짓눌린 삶이 나를 나에게서 분리시켰다. 

아이들에게 새옹지마를 주창하면서 정작 나는 행복하기만을 바라왔었나.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막내의 부정적 감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사라졌던 눈물들이 돌아왔고, 글 쓰는 삶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눈물샘이 수시로 터졌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타인의 희극을 부러워하지만 그 안의 비극은 보지 못한다. 각자가 자신의 비극만을 바라보니까.
삶은 절망과 희망의 연결고리를 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극 같은 삶 속에서도 희망의 고리를 건져 올려 쉴 새 없이 절망과 희망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한다.
완전한 비극도, 완전한 희극도 없다고 믿는 나는 이제 최선을 다해 슬픔에 시간을 내어주고 싶다. 슬픔을 잘 마중하고 나면, 기쁨 비슷한 것이 올지도 모르니까.

어떤 감정도 사소하다거나
가치가 없다고 하지는 마시오!
좋아요, 느낌이란 모두 좋은 것이라오. 증오도, 시기도, 질투도,
심지어는 끔찍함 조차도.
우리는 가련하고, 아름답고, 멋진 감정 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오. 우리가 어떤 감정이든 그르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별을 지워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 라오."
- 클링 조어의 마지막 여름 -




막내야! 는 네 안에 별들을 키우는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매일마다 반짝이며 살고 있구나.

엄마도 매일 나의 별을 반짝이며 키워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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