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흥만 May 09. 2016

마지막으로 기적을 경험한 것은 언제였는가?

다시 돌아온 시공간, 알레프.

내가 사랑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코엘류 소설을 읽는 것이다. 요즈음 읽는 책은 알레프이다. 알레프는 우주 만물과 모든 시간을 축소하지 않고 담은 3cm 구슬을 말하며 소설에서는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이라고 말한다. 아직 다 읽어 보지 못해 이 책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페이지 안에서 가장 기억나는 대목은 이것이다.


데자뷔는,
시간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어제는 명동성당 주일미사에 5분이나 늦었다. 명동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성당은 주일이면 여느 성당의 성탄미사처럼 사람들로 가득 찬 다는 것을..복음과 강론은 성직실습중인 신학교 대학원 과정에 재학하고 있을 가톨릭 부제가 맡았다. 그의 영대와 뽀얀 피부가 그가 부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목소리와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심호흡인 포즈, 아우라까지 신심이 가득한 부제로 보였다. 아마 주교님의 사랑과 기대를 듬뿍 받고 있을 부제일 것이다.


앞자리엔 7살 내외의 장난꾸러기가 비행기소리를 내며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형으로 보이는 아이와 그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한 가족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결혼은 아마 20대 후반에 했을 것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한 아이씩을 옆자리에 끼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것이었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이엄마는 청색 데님으로 만들어진 청색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늘어난 청원피스와 몸매가 그녀가 풋내기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우리 뒷줄에도 앞줄에 앉은 아이와 또래 사내아이로 짐작되는 아이의 칭얼거림이 들리고 있을 때였다.


신심 가득한 부제는 성스럽게 복음 낭독과 강론을 하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부제는 자신의 마음과 하느님에 집중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제는 자신의 목소리에 감화되어 신자들은 한 두 명씩 졸기 시작했을 거라는 건, 생각못한 눈치다. 여기서도 부제는 자신이 아직 경험 전무한 부제라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앞줄 꼬마와 뒷줄 꼬마도 나긋나긋한 부제의 강론에 수면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성당 앞쪽 스테인글라스에 비친 사도 바오로상이 눈에 들어왔다. 명동성당을 그렇게 많이 가봤지만 사도 바오로상이 그렇게 한눈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아름다웠다.


 최근 본 가톨릭 엑소시즘 영화들의 단편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떠오른 영화의 장면은 중요한 소식을 주교에게 전달하러 가는 사제가 주교관으로 향하다 성당 첨탑에 올려져있던 십자가가 떨어져 주교에게 중요한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사도 바오로상의 모습과 내가 요즈음 심취한 '알레프'가 무의식중에 엑소시즘영화를 불러낸 것으로 보였다.


영화던, 실제던 세상은 이렇게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그 일을 악령이 했는지, 천사가 했는지, 아님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는 그러한 신비로 가득하다. 물론 그런 신비이기에 교회도 세상사람들도 잘 믿지 않고 수많은 과학적 검증을 요구한다. 기적 앞에 과학적 검증이라니 나도 모르게 콧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기적을 바란다. 자신의 기적 앞에는 과학을 들이대지 않는다. 공부 안한 학생은 좋은 성적을, 암환자는 치유를, 남자를 만나지 않는 여자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9일 기도를 한다. 신에게 과학을 제외한 후 기적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기적엔 과학적 잣대를 드리댄다.


 내가 하면 사랑, 남의 하면 불륜 이런류의 인지부조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를 가진 인류는 기적을 보는 혜안도 없을 것이다. 만약 있는 인물이라면 이런 얕은 수준의 인지부조화를 가지고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문득 내 앞자리에서 잠든 아이, 그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 그 고사리손에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넣어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삶은, 매순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시 고개를 들어 사도 바오로를 쳐다보았다.


미사가 끝난 후 청계천에 소재한 신비스런 까페를 찾았다. 바밤바쉐이크와 레몬에이드를 주문했다. 어정쩡한 이별을 한 후 괴로워하고 있던 여자후배에게 다시 만나 '뜨거운 안녕'을 하라고 주제 넘은 조언을 해줬다는 이야기를 내 앞자리에 앉은이에게 말하고 있을 때었다. 그 때 그 까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토이의 '뜨거운 안녕'이었다. 지금 당신이 인터넷에 떠다니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글 중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사실은 기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것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